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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톡방에서 짜장라면 요리 얘기가 나오길래,

'에이 뭐 짜장라면 요리해봤자 어차피 짜장면 못 이기잖어~ ㅎㅎㅎ;;'라고 생각하던 와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 근데 짜장라면을 각잡고 요리 분류에 넣어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없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애초에 요리 카테고리에도 못 들어가는 녀석의 모습이

마치 연애를 대회로 친다면 예선도 통과 못 하는 수많은 우리네 청춘들을 대변하는 것 같아 가슴이 너무 아프더군요.

 

비록 [짜X게티 팔린다고 짜장면이 안 팔리진 않는다]라며 소X바다 시절 궤변문구에서까지 조롱받는 짜장라면이지만,

사람도 원래 외모가 원빈이나 설리끕 아닐수록 메이크업과 옷빨로 비벼봐야 하는 겁니다.

 

그런 고로, 오늘에야말로 이 짜장라면을 요리의 반열로 올려보기로 했습니다.

 

 

 

 

준비한 재료부터가 고심이 많았습니다.

 

제일 중요한 짜장라면은 역시 짜짜로니입니다.

과립형 소스를 쓴 타 짜장라면과는 다르게 볶기에 최적화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안 볶으면 포텐셜이 안 살아나서 맛이 미묘해지는 신기한 짜장라면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학계에서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며, 관련해서 구글에 "저주받은 걸작, 짜짜로니"로 검색하면 나오는 글을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다음은 부재료입니다.

소스가 찐하지 않은 짜장라면 특성상 야채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오히려 맛이 밍숭맹숭해집니다.

따라서 마늘과 청양고추, 대파로 한정짓기로 했습니다.

 

고기는 목살을 쓸까말까 정말 고민했는데,

라면 후레이크에 들어간 쪼글꼬득한 콩고기맛을 재현하기 위해 초리조 슬라이스를 썼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쌀 때 많이 사놔서 남아서 쓰는 겁니다.

 

그리고 부재료가 들어가면 필연적으로 연해질 소스맛을 보강하기 위해 굴소스를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이금기 굴소스가 최고긴 한데, 뭐 어쩌겠습니까.

월급쟁이에겐 마트에서 세일하는 굴소스가 최강입니다.

 

 

 

중화요리는 기름과 화력이라는 예로부터의 말도 있으니,

일단 카놀라유를 넉넉히 두르고 미리 썰어놓은 마늘, 대파를 볶았습니다.

마늘에서 갈색이 날 때 즈음해서 썰은 청양고추와 초리조 슬라이스를 넣고 안 타게 약~중불에서 살살 볶았습니다.

 

 

 

부재료들이 다 볶아질 때쯤 면과 건더기스프를 삶기 시작했습니다.

라면 면발이 익어가는 고소한 냄새는 언제나 기분이 좋지만, 오늘은 부재료들 볶는 냄새가 너무 세서 전혀 안 느껴졌습니다.

뭐 파스타 할 때도 어차피 면 삶는 냄새는 신경 안 쓰니까요.

 

 

 

기름을 좀 더 넣었는데도 아무래도 살짝 타기 시작해서,

향을 좀 추가하고 중화식 느낌도 살려볼까 싶어 우리의 친구 이과두주를 좀 넣었습니다.

마트에서 1350원 합니다. 너무 좋습니다.

 

 

 

이어서 짜짜로니 액체소스 1개+굴소스 2T 정도를 추가합니다.

살짝 볶아보니 이과두주 향과 기름지고 매콤한 기름향 어우러져 생각보다 냄새가 제대로입니다.

 

 

 

자작하게 볶으니 비주얼도 나름 괜찮...지만 여기저기 팍팍 튀기 시작했습니다.

딱 좋은 자작함이라 더 볶을 필요도 없으니 여기서 스탑.

이제 다 익은 면과 함께 볶기만 하면 됩니다.

 

 

 

면발의 졸깃함과 기름기 제거를 위해 찬물에 2~3번 헹궜습니다.

이 요리의 관건은 사실 기름기인데, 짜장라면 자체가 애당초 기름기가 꽤 되는데다

부재료를 볶기 위해서도 기름을 쓰고, 고기를 넣을 경우 거기서도 기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늬길해서 속 뒤집어지는 불세출의 망작을 만들어서 싹 다 버리는 꼴 나기 싫다면 면에서라도 기름기를 제거해야 했습니다.

 

 

 

네 다음 흑백대조.

하얀 면발이 이뻐요 이뻐.

 

 

하지만 다음 순간 소스에 태닝!

하하! 달은 차면 기울고 열 밤 붉은 꽃은 없으며, 흰 것은 더러워지기 마련이죠!

너는 더럽혀지고 맛있어졌다 WRYYYYYYYY

 

 

 

저 비주얼을 보니 계란중독자인 저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급성발작이 일어났습니다.

조나하 발작도 좋든싫든 남을 웃겨야 하지 않습니까? 저도 어쩔 수 없이 계란후라이를 했습니다.

 

 

 

계란후라이가 익어가는 동시에 냉동만두도 물에 넣었습니다.

중국집에서는 원래 뭐 시키면 만두 주잖아요. 하지만 군만두는 기름이 너무 쩔으니 물만두로 양보한 겁니다 제가.

 

 

 

이왕 열심히 만들었으니 중국요리 풀셋을 맞추는 게 좋겠지요?

이럴 줄 알고 아까 마트에서 춘권 비슷한 비주얼의 대만 에그롤인가 뭔가를 사왔습니다.

저의 선견지명에 그저 감탄만 나올 따름입니다.

 

 

 

네 이게 완성된 풀코스입니다.

계란 올린 짜장라면에 물만두 4피스, 대만계란롤 과자 2개에 이과두주.

 

솔직히 차려놓고 나서 후회했습니다.

비주얼은 만족했는데 이 양은 다 못 먹을 것 같아서...

 

 

 

뭐 어쨌든간에 짜장라면이 주인공이니 얘만 다 먹어치우면 한 점의 후회도 없지 않겠습니까?

급하게 하느라 계란은 다 터졌지만 여하간에 맛있어보입니다. 후딱 젓가락 들죠.

 

 

 

완☆식.

 

솔직히 개인적으론 백프로 만족할 만한 짜장라면 요리는 아니었습니다.

기름기를 줄인다고 줄여봤는데, 역시 기름을 좀 덜 넣고 이과두주를 먼저 넣었어야 했을 것 같더군요.

초리조 슬라이스는 특유의 향신료 덕분에 겁나게 어울렸지만, 이걸 넣어서 안 그래도 기름지고 짰는데 더해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좀 무리해서라도 기름기를 잡기 위해 양파를 썰어넣었어야 했을 것 같군요.

삶은계란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후라이로 한 것도 좀 실수였습니다. 기름기 때문에 거의 다 먹을 때쯤 속이 좀 부대끼더라구요.

 

 

 

다만 궁극의 짜장요리라는 최초의 테마에는 오히려 어울릴지도 모르는 것이,

"한 달 정도는 쳐다도 안 보고 싶은데, 지금 한 그릇 먹을 때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맛이었습니다.

 

일단 짜짜로니 소스에 굴소스를 더하니까 향만 좋은 게 아니라 맛도 끝내주더라구요.

이과두주를 더한 것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춘장을 따로 안 넣었는데도 이 소스는 다른 요리에도 쓸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그리고 청양고추.

2개를 썰어넣었는데, 정말 신의 한 수였습니다.

1개만 썰어넣었으면 아무래도 기름기를 못 이기고 남겼을 것 같은데 매콤한 맛이 딱 좋아서 싹싹 긁어먹게 되는 맛이었습니다.

매운맛은 언제나 옳습니다. 마늘맛도 이 매콤함에 잘 어울렸구요.

 

만두랑 계란롤은 맨 마지막에 장난식으로 같이 곁들였는데 생각보다 중화요리 느낌이 났습니다.

만두는 말할 것도 없고, 계란롤은 파르페에 꽂는 그 길다란 과자맛 베이스에 계란맛이 더 진하게 나더라구요.

느끼하고 기름진 짜장라면에 의외로 어울리는 사이드였습니다.

 

 

 

"완전한 궁극의 짜장라면에 아종따윈 필요없다. 정점은 하나면 충분하니까!"

라곤 해도 이건 완전하다고 보기엔 좀 그렇군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쪼끔 아쉽지만 이 한 그릇으로도 궁극을 살짝 노려볼 수 있었다는 재미난 확신은 들었습니다.

당연히 짜장면하곤 못 비빌 퀄이지만, 원래 싸움은 얼뜨기들 싸움이 제일 재밌지 않습니까.

 

짜장라면으로서의 궁극은 아직도 멀고 험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심심할 때 더 나은 짜장라면 요리를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또 들겠군요. 

SNS에 올릴 정도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론 꽤 재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