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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나한

(장편소설)마마레후

2019.06.28 04:04

하느 조회 수:88

일반적으로 실장석이 생존하기 위한 조건은 그닥 까다롭지 않다. 대부분 먹이 수급만 어느정도 보장 되면 어디서나 끊임없이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주변에 충분한 음식물 쓰레기가 공급되는 상권을 포함한 주거지역이 있고, 그 주거지역 중심부에 수십헥타르에 달하는 커다란 공원이나 야트막한 뒷산이 있다면, 실장석은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로 늘어날 수 있었다. 수원시의 팔달산에 위치한 팔달공원 역시 같은 위험성을 갖고 있었다. 팔달공원은 팔달산(八達山) 중턱에 있는 공원으로, 면적은 51만 8,188㎡에 이르며, 팔달산 주변을 상가와 빌딩, 그리고 주거지역이 꼼꼼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말 그대로 실장석에게는 천혜의 서식지나 다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람의 눈을 피해 살 수 있는 장소와, 풍부한 쓰레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 사방에 있는 팔달공원의 지리적 환경은 실장석에게는 가히 천국에 가까운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팔달공원은 실장석이 한국에 유입된 이후에도, 실장석이 거의 보이지 않는 공원으로 알려져 있었다. 실장석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임에도, 실장석이 좀체로 보이기 어려웠던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공원이 민간 주체의 공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1974년 공원으로 지정되어 1985년에 공원으로 건설되어진 팔달공원은 애초에 첫 삽부터가 사적 제3호로 지정된 화성(華城) 나들이의 출발지로 계획된, 일종의 문화재 관리차원에서 조성된 공원이었다. 공원을 시작지점으로 하여, 정상의 사장대를 정점으로 하여 화성 성벽 1.2km와 화성행궁까지 아우르는 일종의 문화재 공원으로 계획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팔달 공원은 일반적인 민간 공원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엄격한 관리가 이어져 왔고, 그것은 실장석이라 해도 예외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실장석이 대량서식하기 좋은 환경임에도, 팔달공원은 실장석을 거의 구경할 수 없는 깨끗한 공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장석을 거의 구경할 수 없다는 것은 아예 실장석이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수원시 공무원의 감시를 피해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극히 적은 숫자의 실장석들만이 팔달공원 근처에서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여기 보이는 야트막한 산비탈에 세워진 골판지 역시 그러한 "극소수의" 실장석들의 둥지들 중 하나였다.

 

 

기본적으로 골판지 박스로 지어진 점은 일반적인 실장석의 둥지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세부적인 면은 좀 달랐다. 우선 비탈을 ㄴ 자로 파낸 다음, 거기에 비닐을 펴서 붙인 뒤에 박스를 끼운 특이한 둥지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노출된 나머지 박스의 윗부분에는 낙엽과 비닐을 운치를 발라 덧붙여, 멀리서 보면 비탈길에 자그마한 둔덕 하나가 솟아오른 듯한 모습으로 보이게 만들어 둔 형태였다. 게다가 둥지의 위치도 아주 적절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한 민가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도 않으면서도, 공원으로 통하는 화성성곽 너머의, 사람이 일부러라도 가려고 하기 힘든 장소에 위치해 있었다. 물론 이 터를 잡았던 성체실장도 이 모든것을 파악하고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쩌다 보니 그랬던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이 둥지의 실장석은 나름 행복한 실장생을 살아올 수 있었다. 들실장생이 행복하다고 보긴 어렵겠지만, 일단 배를 곯지 않는다는 것과, 월동을 두번이나, 그것도 나름 풍족하게 해왔다는 것은 들실장의 기준으로는 대단히 행복한 수준이라 말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행복한 실장석에게도 한가지 고민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자들 중 하나인 장녀였다. 지금 이 골판지 하우스 안에는 성체실장이 둘 있었다.

 

 

하나는 친실장인 자신이었고, 다른 하나는 장녀였다. 본디 친실장은 작년봄에 다섯마리의 자실장을 가졌지만, 막내와 삼녀는 친실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낮에 놀러 나갔다가 자매들의 눈 앞에서 까치밥이 되었고, 사녀와 차녀는 인간에게 멋대로 다가갔다가 그자리에서 걷어채여 죽어버렸다. 장녀는 친실장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둥지에 남아 있었기에 살아남았지만, 4명의 자매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연달아 보게 된 장녀는 위석에 큰 타격을 받고, 일종의 정신적 퇴행 상태가 되어 있었다. 겨울을 장녀와 보내고, 다시 봄과 여름을 지나서, 늦가을에 접어든 지금, 장녀는 크기로만 보면 성체실장에 가까웠다. 하지만 행동거지나 정신상태는 엄지실장과도 같았다.

 

보통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렇게 망가진 자실장을 처분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친실장은 그렇게 할 정도로 모질지가 못했다. 친실장 자신 역시 구제로 인해 가족을 떼몰살당한 기억이 있는 데다, 정착해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아 처음 가져본 자식들 역시 얼마 되지 않게 몰살하다시피 된 시점에서 친실장은 마지막 하나 남은 장녀에게 기대를 쏟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초겨울에 접어든 지금에는 기대를 대부분 접게 되었다. 그럼에도 친실장이 이 망가진 장녀를 내치지 않는 것은 월동에 지장이 없을 만큼 먹이를 충분히 구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장녀가 친실장에게 꽤나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보통 성체실장이 되면 자신이 자녀라고 할지라도 영역다툼 등으로 인해 불화나 싸움이 일어날 수 있었지만, 장녀의 경우에는 유아퇴행 상태인 데다 본래부터 마마의 말에 잘 순종하는 성격이었고, 자매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연거푸 목격한 덕분인지 매우 겁이 많고 친실장에게 의존적인 성격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겉으로는 성체실장이지만, 하는 행동거지는 개념엄지 그 자체였다. 때문에 친실장에게는 노동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으면서도 자신에게는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사랑만을 갈구하며, 단지 마마에게 인정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상황이었기에 친실장은 장녀가 성체실장이 되었음에도 내치지 않고 여전히 장녀를 키워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미 된 입장에서, 엄지실장이라고 생각하는 장녀는 은근히 스트레스였다.

 

 

친실장의 입장에서 장녀는 여전히 자로서 느껴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독립시킨 자가 한마리도 없다는 점은 그녀의 책임감을 더 깊게 만들고 있었다. 그랫기에 친실장은 장녀를 나름 원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초가을 즈음 추자를 낳아 직접적으로 장녀스스로가 엄지가 아님을 깨닫게 해보기도 했고, 장녀에게 꽃을 구해주어 임신을 시키기도 했지만, 장녀는 그런충격(?)요법으로도 좀처럼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나마 친실장이 얻은 성과라면, 친실장이 낳은 자실장 세 마리와 엄지 세마리를 돌보는 과정에서 자신을 엄지 실장이 아니라 자실장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애초에 성체 실장이 자신을 자실장으로 생각한다는 시점에서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셈이었다. 게다가 임신의 경우엔 하느니만도 못한 결과가 나왔다. 장녀 스스로가 자실장이라고 믿고 있었던 탓인지, 낳은 자들은 모조리 미성숙된 구더기였던 것이었다. 친실장은 장녀를 위로하면서, 자신의 자들에게 열마리의 미성숙 구더기를 운치굴에 넣고 오라고 시키고는 장녀를 보듬어 안았다.

 

 

 

 

"장녀. 슬퍼하지 말라는 데스. 아직 때가 너무 일렀던 것일 뿐인 데스요."

 

"테에에엥. 마마. 그래도 슬픈 테츄우."

 

"눈물 뚝 그치는 데슷! 마마처럼 커졌는데 아직도 꼬맹이들처럼 울면 안되는 데슷!"

 

"알겠는 테치..."

 

 

 

 

 

친실장은 성체 실장 수준으로 커진 장녀가, 마치 태어난지 몇일 되지 않은 자실장처럼 구는 모습에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이전보다는 나아진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레치레치 거리면서 구더기를 프니프니해주겠다는 판이었으니 말이다. 친실장은 장녀를 껴안았던 손을 풀고는, 자신의 뒤로 테치 테치거리는 자실장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들! 시킨대로 운치굴에 버리고 온 데스?"

 

"그런 테츄! 마마!"

"각자 세마리씩 들고 간 테치!"

"너무 힘든 테츄..."

 

 

 


테치 테치 거리면서 세마리의 자실장은 친실장을 향해 자신들이 해낸 일을 떠들었다. 그리고는 마마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친실장의 옷에 자신의 얼굴을 부벼댔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친실장 역시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자들을 안아들었다.

 

 

 

"좋은 데스. 말 잘듣는 자들인 데스."

 

 

 

친실장은 벙어리 손으로 자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어 준 다음, 장녀 옆에 내려놓고는 운치굴을 향해 움직였다. 골판지 구석에 있는 운치굴의 뚜껑을 열어보자 그 안에는 두마리의 독라 엄지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구더기들이 레후레후 거리면서 기어다니고 있었다. 친실장이 유심히 바닥을 살피는 동안, 두마리 중 한마리가 친실장을 향해 레치 레치 거리며 입을 열었다.

 

 

 

"마마! 죄송한레챠!! 방금전에 주신 쪼끄마한 구더기들이 다 죽어버린 레에에엥!"

 

"괜한 걱정인 데스. 방금 전 넣은 구더기들은 자가 아닌 데스. 먹어도 되는 것인 데스."

 

"그...그런레치카?"

 

"그런데스. 다른 자들과 함께 잘 나눠 먹는 데스."

 

"감사한 레치!"

 

"그리고 오늘 나갈 차례는 오마에인데스. 준비하고 있는 데스요."

 

 

 

 

 

친실장은 잠시 엄지실장들을 바라보다가, 방금 전에 자신에게 상황을 보고했던 엄지에게 나직하게 한마디를 하고는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는 가을에 낳은 자실장 세마리와 함께 테츄테츄 떠들고 있는 장녀를 보면서 살짝 한숨을 내쉬며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친실장은 먼저 자신의 두건을 벗어 뒤로 넘기고는, 자신의 뒷머리를 모아서 두건 속으로 쑤셔 넣었다. 실장석의 신체 구조상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친실장은 하루이틀 해본 게 아니라는 듯 능숙하게 두갈래의 뒷머리를 벗어서 뒤로 넘긴 두건의 빈 공간에 차곡차곡 개어 넣었다. 마침내 뒷머리가 그득그득 두건 속으로 들어가자, 친실장은 검정 비닐봉투 두개를 꺼내어 오른팔을 손잡이 구멍안으로 끼워넣은 다음, 골판지 벽에 기대어 놓은 부러진 나무젓가락 하나를 집어 들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친실장은 운치굴의 뚜껑을 열고는, 방금 전에 말했던 엄지를 불러내어 운치굴에서 꺼내고는, 구겨진 은박 접시 위에 올려놓은 다음, 500미리 페트병을 기울여 아주 조금 물을 따라내었다.

 

 

 

 

"레 레치이이잇!"

 

 

 

엄지는 차가운 물이 발끝에 닿자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하지만 곧 늘 있던 일인것마냥, 엄지도 조용히 은박접시 위에 고인 물로 자신의 몸을 닦아내었다.

 

 

 

"다 닦으면 말하는 데스."

 

 

 

친실장은 엄지에게 나직하니 말을 건네고는 다 씻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뒤에서는 뭔가 일이 난 듯했다. 테챠 테챠 소리가 소란스럽더니, 자실장들이 친실장 뒤로 도도도 달려와서는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마마! 운치 싼 테츄!"
"장녀차가 운치 싼 테츄아아아!"

 

"또인데스?"

 

 

 

 

자실장들의 소란에 뒤를 돌아본 친실장 앞에, 장녀가 선 채로 빵콘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친실장은 헤휴-하고 한숨을 뱉고는, 자실장들을 한데 모아 벽 구석에 세워 둔 다음 장녀를 향해 말했다.

 

 

 

"그만큼 컸는데 아직도 운치를 못 가리는 데스?"

 

"죄송한 테츄...."

 

"얼른 자리로 돌아가서 운치를 털라는 데슷!!"

 

 

 

 

친실장의 호통을 들은 장녀는 어기적어기적 구석 자리로 돌아가서는, 운치를 털어냈다. 터는 내내 레풋 레풋 하는 소리를 내는 장녀를 바라보던 친실장은 짜증보다는 동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장녀도 슬픈일을 당하기 전엔 자신의 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였고, 그대로 자랐더라면 오래전에 독립해 나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장녀의 모습은 겉만 성체실장일 뿐, 자신의 운치도 제대로 못 가리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실장과도 같았다. 그 시절에 자신이 모질지 못해서, 분충끼가 있는 자들을 솎아내지 못해서 장녀가 저렇게 되어버렸다는 자책감이 느껴지자, 친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자실장들은 어미와는 생각이 다른 듯, 연신 데프프 거리며 수군대고 있었다.

 

 

 

"장녀차 구더기만도 못한테치. 운치도 못가리는테치!"
"인간도 메로메로 못시켜서 슬픈일 따위나 당하는 분충인테츄!"
"한심한테츄! 데프프픗!"

 

 

 


자실장들은 친실장이 바로 뒤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도 잊은 듯, 장녀를 비웃기 바빴다. 그리고 그것을 본 친실장은 데휴 하고 한숨을 쉬고는 익숙하다는 듯 손을 들어올려 자실장 세마리의 정수리에 힘을 가감한 춉 세례를 날렸다.

 

 

 

 

"테츄앗!"
"테뵥!"
"테큐웃!"

 

 

 

 

자실장들은 난데없이 뒤에서 내려친 친실장의 수도(?)를 맞고는 조그마한 팔로 머리를 감싸쥐며 고통스런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던 친실장이 말했다.

 

 

 

"벌써 마마가 가르쳐준 것을 까맣게 잊은 데스요? 장녀차는 인간에게 멋대로 다가간 자매를 구하려다 저렇게 된 것인

데스!! 바깥에서 인간에게 슬픈일을 당해서 저렇게 됬다고 몇번이나 말한 데스카!! 인간에게 메로메로 따위 통하지

않는 데슷!! 밖은 위험하고 인간은 더더욱 위험한 데스!! 이걸 잊으면 슬픈일을 당해서 저렇게 되는데스. 마마의 가

르침을 잊는 분충은 마마의 자가 아닌데스요!!"


"츄우..."
"찌이이..."

 

 

 

 

친실장은 자들에게 단호하게 호통을 쳤다. 그러자 자실장들은 그 박력에 눌려 아무말도 못한 채 손이 닿지 않는 자신의 정수리를 만지려고 애를 쓰며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장녀차를 비웃지 마는 데스! 어기는 자는 독라 운치굴행인줄 아는 데슷!!"

 

 

 

 

친실장의 호통을 들은 자실장들은 말도 못 하고 고개를 꾸벅거렸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던 친실장은 고개를 돌려 엄지가 있던 곳을 보고는, 엄지가 몸을 다 씼은 것을 확인하고서 엄지를 들어 자신의 두건 안에 집어 넣었다. 엄지가 두건 안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한 친실장은 장녀에게 자실장들을 잘 보고 있으라고 말한 다음 골판지 집을 나서면서 입구에 돌을 올려 열리지 않게 한 다음 비탈길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친실장은 비탈길을 타고 내려가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졌건만, 친실장은 오히려 기운차게 걸음을 옮겨 나갔다. 보통 실장석들의 행동패턴은 낮 동안에 먹을 구하고, 저녁에 들어와서 밥을 먹고는 잠을 자는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일가는 좀 달랐다. 오히려 낮 동안에 잠을 자고, 해가 꼬박 진 후에 먹을 것을 구하러 돌아다니다가, 새벽녁에 집으로 돌아가 구해온 밥을 먹이곤 했다.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인접한 주거지역의 대다수가 술집이나 고깃집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보통 고깃집이나 주점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내놓기 전에, 집집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은 작은 통 안에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놨다가 새벽녁에 문을 닫으면서 한꺼번에 내놓기 마련인데, 친실장은 그것을 노려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오곤 했었다. 물론, 이것은 실장석 혼자서 하기엔 매우 위험부담이 큰 일이었다.

 


우선 성체 실장이라 하더라도 들개나 들고양이에 비하면 비교조차 불쌍할 정도로 허약한 신체 스펙을 지니고 있는 데다가, 들실장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최저였기에 발각되면 그자리에서 죽을 각오를 해야 했다. 게다가 두 눈의 시력과 청력은 상당히 좋지만, 실장석 특유의 행복회로 때문에 우마우마한 먹이를 보게 되면 아무리 개념개체라 할지라도 몇초 동안 헤롱거리면서 멍하니 있는 일이 종종 생기는데, 이럴때 인간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그대로 삼도천을 건너기 십상이었다.

 

 

친실장이 두건을 벗고, 여기에 엄지를 넣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였다. 자신이 음식물에 정신을 쏟는 동안, 엄지는 두건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주위를 잘 살펴야 했다. 친실장의 취약한 후방, 상방 시야를 엄지로 보완하는 셈이었다. 엄지는 두건 안에서 살피다가, 뭔가를 발견하면 소리내지 않고 두건안에 포개어둔 뒷머리를 잡아당겨 친실장에게 위험을 알리는 방식이었다. 친실장은 이 방법을 써서 인간들에게 들키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오고 있었다. 물론 처음에 이 방법을 썼을 때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주변을 살펴봐야 할 엄지가 따듯한 뒷머리에 묻혀 조는 일은 일상다반사였고, 인간을 본 엄지가 놀라서 큰 소리로 레챠아앗 하고 외친다던가, 아니면 아예 두건에서 빠져나와서 인간에게 아첨하는 일도 있기도 했다. 하지만 친실장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도전했다. 말을 안 듣는 분충엄지는 바로바로 솎아 내고, 말 듣고 따르는 엄지를 훈육한 결과, 두마리의 숙련된 엄지실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성체실장과 엄지실장의 기묘한 협동은 먹이 구하는 효율을 몇배로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존에는 친실장이 하루 진종일 쫓겨다니면서 발이 부르트다시피 움직여도 가까스로 자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정도였다면, 숙련된 엄지를 구하고 난 이후부터는 자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상당수의 음식물을 보존식으로 채워넣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이미 가을이 되기도 전에 웬만한 실장일가 두개분의 월동 보존식을 준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이렇게 먹이를 구하기 쉬워진 것은 엄지를 활용한 점도 있었지만, 자신의 둥지와 인접한 주변 환경의 덕도 있었다. 자신의 둥지 위로는 팔달공원이 있었고, 둥지 아래로는 민가와 주점, 먹자골목이 잔뜩 밀집해 있었다. 공원 내부는 수차례에 걸친 철저한 구제로 인해 주변에 자신과 경쟁할 실장가족은 없다시피했지만, 정작 친실장의 둥지는 공원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성벽 너머에 있었기 때문에 구제의 손길을 벗어날 수 있었고, 팔달산에 인접한 주거지역과 음식점들은 매일 새벽마다 엄청난 양의 음식물 쓰레기를 쏟아내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엄지를 사용해서 시야의 사각을 보완하는 방법을 쓰게 되자, 친실장은 전적으로 먹이를 가져오는 데에만 정신을 쏟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실장석은 배고픈 월동이 아니라 배부른 월동을 보내는 데 성공한, 들실장 기준으로서는 매우 행복한 실장생을 누리고 있었다. 애초에 이 친실장이 추자를 낳은 이유만 봐도, 장녀의 정신적 치유를 위한 수단으로 추자를 낳은 거라는 걸 감안하면 그 풍족함은 구태여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친실장이 먹이를 구하는 일은 하루 하루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오밤중에 산비탈을 내려가는 동안 냐옹씨나 멍멍씨에게 걸리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술먹고 돌아다니는 인간들에게 띄지 않아야 했다. 그렇기에 친실장이 골판지 집을 나서는 때는 인간의 시간으로 얼추 밤 12시를 넘긴 시기를 택하곤 했다. 물론 실장석이 시간개념을 철저히 아는 것은 아니기에, 산비탈에서 계속 아래의 민가를 살펴보다가 인적이 뜸해지고 집집마다 켜진 불이 한둘씩 꺼져가는 것을 보고 둥지를 나서는 것이지만, 얼추 밤 12~2시 사이에 친실장은 먹이를 구하러 내려오곤 했다.

 

 

 


"여기가 중요한 데스..엄지는 주변을 잘 살피는 것 잊지 마는 데스요."

 

"마마 걱정 말라는 레츄. 마마도 조심하란 레치."

 

 

 

 

친실장은 비탈길을 내려오자마자 보이는 첫번째 먹이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주거지 안쪽으로 들어가다보면 작은 호프집이 하나 있는데, 여기는 종종 새벽에 쓰레기를 한꺼번에 버리기 전에, 장사하면서 나오는 튀김 조각이나 닭뼈를 들통에 모아두었다가 한꺼번에 처리하곤 했다. 친실장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친실장은 들통이 시야에 충분히 들어오는 위치까지 조심조심 접근한 다음, 근처의 잡목림에 몸을 감추고는 끈기있게 기다렸다. 추운 바람이 스치고, 초겨울의 낮은 기온이 성체 실장석의 몸을 스치면서 추위를 느낄 법도 했건만, 친실장은 데스 하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엎드려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기다렸을 무렵, 가게 뒷문이 열리고, 들통에 음식물 쓰레기를 채우러 나온 종업원이 보였다. 종업원은 부쩍 낮아진 추위에 잠시 몸을 떨면서, 쓰레기를 들통에 채운 다음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뒷문을 닫았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뒷문이 닫혔지만, 여전히 친실장은 뒷문을 노려본 채 기다렸다. 마침내, 뒷문의 유리창에 비치는 조명까지 꺼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친실장은 몸을 일으켜 들통을 향해 뒤뚱뒤뚱 뛰어갔다. 엄지가 두건에서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열심히 살피는 동안, 친실장은 들통 안에서 씹다 만 치킨 서너조각과, 튀김옷 찌꺼기인 텐카츠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얼른 봉지를 펴서 퍼담기 쉽게 했다.

그리고 텐카츠를 먼저 쓸어 담고, 치킨 조각들을 주워 봉투에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아래에 먹다 버린 소면을 지나치지 못하고 마저 퍼담는 도중, 두건안의 엄지가 뒷머리를 잡아당기는 것을 느끼고는 서둘러 들통 뚜겅을 닫고 잡목림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들어갔다.

 

가까스로 친실장이 잡목림 사이로 들어갔을 때, 뒷문 유리창에 불이 들어오더니, 조금 전 사내가 뒷문을 열고 나와서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들통 주변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텐카츠 부스러기와 소면 몇 가닥이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사내는 그저 조금 전에 쓰레기를 치우면서 떨어진 것이겠거니 하고는 그대로 담배를 비벼 끈 채로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큰일날 뻔했는 데스. 엄지 정말 잘 한 데스요."

 

"마마 도움이 되어서 기쁜레치"

 

"집에 돌아가면 오늘 하루는 마마 품에서 자도 좋은 데스."

 

"정말인레치? 마마 감사한레치!!"

 

 

 

 

일반적으로는 엄지가 독라 운치굴행이 된 시점에서는 보통은 자로 대우받을 일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일가는 조금 달랐다. 엄지에 대한 인식은 친실장이라고 별다를 바 없었지만, 최소한 상과 벌에 대해서는 엄지건 자실장이건 공평하게 대하고 있었다. 독라 엄지라고 해도 말 잘듣고 시킨것을 잘 하면, 그에 맞는 상을 반드시 주었다.

 

물론 친실장이 이러는 것은 그저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 아무리 엄지라고 해도, 지나치게 홀대하기만 하면 파킨하기 일쑤인데다, 사소한 일로도 금방 절제를 잃고 보존식을 다 털어버리거나 일가실각의 단초를 제공하기 쉬웠다. 하지만 엄지에게 "할수 있는 일"을 제공해주고, 그것을 잘 해냈을 때 엄지가 그토록 원하는 마마의 관심을 준다면, 엄지에게 살아갈 희망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마마의 말을 절대 어기지 않는 것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실장석은 모두가 다 알다시피, 한번 올라가면 쉽사리 내려오기 힘든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독라 운치굴로 떨어진 엄지가, 한번이라도 마마의 관심을 받게 되고, 그것이 마마의 말을 잘 지켜서 얻어진 것임을 깨닫는다면, 엄지는 다시한번 마마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마마의 말을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하게 마련이었다. 실제로 두건 안의 엄지는 마마와 같이 하룻밤을 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기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이 끝까지 일을 제대로 해낼때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친실장은 그것을 분명히 엄지에게 다시한번 일러두었다.

 

 

 

 

"마마의 말을 잘 지키는 자에게는 상을 주는 데스. 집에 도착할때까지 주변을 잘 살피는 데스!"

 

"알겠는 레치! 잘 보고 있겠는 레츄!"

 

 

 

 

친실장은 들떠있는 엄지에게 다시한번 단단히 일러 둔 다음,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친실장이 집으로 가는 동안 인간도, 차도, 냐옹씨도 만나는 일이 없었지만, 초겨울의 추운 밤에, 무거운 짐을 들고, 두건에는 엄지를 넣은 채로 경사진 비탈길을 오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우마우마한 밥을 배불리 먹일 생각을 하자 친실장은 발에 힘이 솟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힘주어 걸음을 떼어 비탈을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던 친실장은 겨우 골판지둥지에 도착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자들, 얌전히 집 잘보고 있었는 데스?"

 

"마마 어서오시란 테치!"
"밥! 바압!"
"굉장히 아마아마한 냄새가 나는 테츄...."

 

 

 

 

친실장은 자실장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두건 속에 있는 엄지가 잘 내려올 수 있도록 몸을 굽혀 앉고는, 봉지속에 든 내용물을 하나하나 꺼내놓기 시작했다. 먼저 씹다 버린 치킨조각을 여러개 꺼낸 친실장은 아직도 뼈에 살점이 두둑히 붙은 조각을 자실장과 장녀에게 하나씩 나눠주고는, 봉지를 반쯤 열어서 안에 가득 찬 소면을 각자 꺼내먹을 수 있게 펼쳐놓으면서 말했다.

 

 

 

 

"자들. 어서 먹는데스. 많이 먹고 쑥쑥 자라야 하는 데스"

 

 

 

 

먹어도 좋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상자 안은 데찹 데찹 하는 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자실장들은 각자 자신에게 하나씩 주어진 치킨 조각을 씹으면서 연신 우마우마 소리를 외쳤고, 친실장 역시 그런 자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면서 소면과 치킨 조각을 입에 넣고 있었다. 친실장이 들고 있는 치킨 조각은 사람 기준에서 보면 먹지도 못할 음식물쓰레기였지만, 들실장 기준에서는 매우 호화스런 것이었다. 살점도 어느정도 붙어 있는 데다가, 기름에 튀긴 치킨 조각은 한입 한입 베어 물을 때마다 영양과 지방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한 만족감을 주었다. 소면 역시 인간이 먹다버린 쓰레기에 불과했지만, 자실장들에게는 무척이나 먹기에 부드럽고 고소하게 느끼는 듯 우마우마 소리를 내면서 봉지에 거의 머리를 박다시피 흡입하고 있었다. 친실장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자들을 보면서 흐뭇해 하다가, 문득 엄지의 존재를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엄지는 내내 친실장의 옆에 서서 자매들이 먹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친실장이 자신을 바라보자 울먹울먹하는 눈동자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마마... 엄지도... 먹고 싶은 레치엥..."

 

 

 

친실장은 엄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른 봉지에 따로 담아서 가져온 텐카츠를 한줌 꺼내 엄지 앞에 내려놓았다. 조금만 일찍 알아차렸다면 치킨 조각 부스러기라도 챙겨 줬을 테지만, 이미 분배를 마친 마당에 엄지를, 그것도 독라엄지에게 준답시고 자들에게 배분한 것을 떼어냈다간 소란이 일어날 게 뻔했다. 아무리 마마가 무섭다 해도 실장석의 본능에 뿌리깊게 박힌 독라 = 노예 라는 공식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엄지가 먹이를 구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하더라도 자실장들에게 한번 미운털이 박히면 어찌 될지는 안봐도 뻔할 것이었다.

 

 

 

 

"치킨 조각은 아직 딱딱해서 엄지가 먹긴 어려운 데스요. 대신 부드러운 이걸 먹는 데스."

 

"마마 감사한레치. 이것도 충분히 우마우마한레치!"

 

 

 

 

친실장은 동글동글한 이 작은 부스러기들이 텐카츠라고 불리는 것을 몰랐지만, 나름 치킨조각만큼은 아니더라도 꽤나 고소한 맛이 나는 데다 굉장히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상 터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텐카츠는 모으는 족족 보존식으로 저장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 실장 일가가 평소에 먹는 밥에 비하면, 텐카츠는 정말 별볼일 없는 먹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인간이 먹다 버린 것이긴 해도 매일같이 생선이나 굽거나 튀긴 고기조각을 먹는 마당에, 고작 밀가루 튀김옷 찌꺼기에 불과한 텐카츠는 친실장 스스로도 그닥 선호할 만한 우마우마가 아니었다. 하지만 엄지는 얼굴 가득히 행복감에 가득차 진심으로 마마에게 감사를 표하며 텐카츠를 꼭꼭 씹어 먹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친실장은 마음 속으로 슬며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친실장의 마마가 가르쳐준 대로, 엄지는 태어나자마자 독라로 만들어서 운치굴에 박아넣었지만, 이 독라 엄지는 자신이 두번이나 월동에 성공하는 내내 낳은 수많은 엄지 중에서도 가장 유별나고 특별했다. 친실장이 고안해 낸 엄지를 두건속에 넣어서 경보장치로 써먹는 이 방법을 가장 잘 이해한 것도 오녀와 육녀 엄지였다.

 

육녀는 몸이 약해서 대개 일하는 것은 오녀 엄지였지만, 초겨울인 지금에 와서는 친실장에게 있어서 가장 도움이 되는 자는 성체실장급의 덩치를 지닌 장녀를 빼면, 사실상 오녀 엄지가 유일했다. 그저 오녀가 자실장이 아닌 엄지로 태어난 탓에, 자신을 엄지라고 착각하는 바보 장녀를 빼면 사실상 차녀나 삼녀, 사녀에게조차도 같은 자매 취급도 못 받고 독라노예 취급받으며 지낼 뿐이었지만, 친실장은 매번 그때마다 작은 한탄을 마음속으로 되새기곤 했다.

 

 

 

'차라리 이 자가 엄지가 아니라 자실장으로 태어났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말인데스....'

 

 

 

 

자실장이냐, 엄지실장이냐 하는 차이를 빼고 보면, 오히려 가을에 태어난 자실장들은 바보가 되어버린 장녀차나, 텐카츠를 먹고 있는 엄지보다도 하는 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장녀차는 마음은 엄지실장이라 해도 몸은 성체실장이었기에 집 근처를 보수하거나 물건을 나르고 굴을 파는 데에는 매우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당장 이번 월동 준비만해도, 밤낮가리지 않고 장녀가 플라스틱 수저로 열심히 땅을 파낸 탓에, 큼직하고 편리한 운치굴과 보존식 저장할 저장고를 집안에 둘. 밖에 한개를 만드는 것도 모자라서, 배수로와 도망칠 통로까지 겨울씨가 오기전에 마련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을 제외한 자매들을 모조리 잃은 그 슬픈 일 이후로 스스로를 엄지실장이라고 생각하는 유아퇴행과 더불어서, 운치도 잘 못가리는데다 약간 바보스러워진 면이 있어 먹이를 구하러 같이 나갈 수는 없었지만, 그 외의 육체적 노동력으로서는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 엄지실장은 육체적 노동력으로는 자실장만도 못했지만, 육녀 엄지는 몸은 약해도 운치굴 관리도 아주 잘 해내서 파킨한 구더기가 하나도 없었고, 오녀 엄지는 먹이를 구하러 나갈때마다 마마의 등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기에 먹이 수급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을에 낳은 자실장 세마리는 전혀 아니었다. 그저 먹고 싸는 기계. 딱 그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애초에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자실장에게 도움을 요구할 어미는 없겠지만, 성체실장급의 덩치를 가지면서도 스스로를 엄지라고 생각하는 장녀와, 일가의 누구보다도 가장 똑부러지는 개념과 성실함을 갖춘 엄지들 때문에라도 은연중에라도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애초에 친실장이 장녀의 정신적 퇴행을 치료해 보기 위해서 낳은 자실장이기에 망정이지, 그냥 일반적인 추자였다면 애저녁에 말린 월동용 육포가 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실장들은 친실장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가 터지도록 먹고는 하나같이 배를 잔뜩 부풀린 채로 누워서 헥헥대고 있었다.

 

 


"헤휴. 헤휴우"
"너무너무 우마우마한 테츄우우..."
"우마우마한데 왜 더는 못먹는 것인 테츄아.. 먹고 싶은데 더 먹어지지 않는 테츄.."

 

 

 

 

가을에 낳았던 추자 3마리가 배불리 먹고 바닥에 드러눕자, 친실장은 남은 음식을 한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눈치빠른 오녀 엄지는 쪼르르 달려가 친실장이 미처 치우지 못한 자잘한 부스러기를 하나하나 주워 옮겼고, 뒤늦게나마 장녀도 바닥을 치우고 남은 먹이를 정리하는 작업에 동참했다. 한데 모은 음식 부스러기들은 큰 것들은 장녀와 친실장이 골라내어 보존식이 될 만한 것을 분류하기 시작했고, 엄지는 남은 텐카츠와 작은 부스러기들을 맡아 부지런히 보존식 구덩이로 옮겨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충 정리가 끝나자, 친실장은 자실장들을 공을 굴리듯 툭툭 쳐서 한쪽으로 몰아 넣었다. 자실장들은 잠시 테츄앗 하고 소리를 냈지만, 늘 있는 익숙한 일인 듯, 곧 포만감에 굴복한 세마리의 자실장은 한데 엉켜 잠이 들었다. 자실장들이 모두 잠에 들자, 친실장은 장녀를 골판지 구석의 장녀 전용의 잠자리에 눕게 하고는, 자신은 장녀와 자실장 사이를 가로막는 자세로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그것을 내내 지켜보는 자그마한 엄지를 손짓해 부르고는, 오녀 엄지를 소중한 듯이 품에 안았다.

 

 

 

 

"오늘은 마마 품에서 자는 데스. 오늘은 정말 잘 했는 데스. 역시 마마의 자인 데스."

 

"기쁜레치. 마마도 안녕히 주무시란 레츄."

 

 

 

 

엄지는 기쁜 듯 마마의 품 안으로 얼굴을 부볐고, 친실장은 그런 엄지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그리고 친실장은 엄지가 보에-보에 하면서 잠이 드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 때, 장녀가 갑자기 친실장을 건드리는 통에 잠에서 깬 친실장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을 내었다.

 

 

 

"뭐인데스? 장녀. 또 자다가 운치 지렸으면 알아서 혼자 치우라는 데스."

그러자 장녀는 머리 위에 ? 표시를 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데...마마. 조금전에 마마가 날 깨운거 아닌테츄?"

 

 

 

 

친실장은 장녀의 답변에 잠시 벙찐 표정을 하고는 장녀를 가만히 보았다. 장녀의 표정을 보니 진짜로 마마가 깨웠다고 믿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 근방엔 사람은 고사하고 같은 동족의 둥지 자체가 없는 곳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방금 전에 잠이 들락말락하는 상태였으니 설령 깨웠다 해도 그걸 기억해내지 못할리는 더더욱 없었다. 친실장은 장녀가 피곤해서 잘못 들은거겠거니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몸이 안 좋은 데스우? 어서 자는 데스. 마마가 뭐하러 부르겠는데스우? 내일도 할일이 많은데스. 푹 자는게 좋은데스우"

 

"미안한 테츄우... 꿈을 꾼 모양인 테치."

 

 

 

 

장녀는 그 말을 듣고는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친실장도 그런 장녀를 잠시 보다가, 엄지가 몸을 뒤척이면서 춥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자 엄지를 다시 끌어안고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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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후가 되어 친실장과 자실장들은 잠에서 깼다. 보통 일반적인 실장일가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활동하는게 일반적이지만, 이 일가는 사람 기준으로 낮 3시 정도에 일어나 움직였다. 바깥은 밤새 펑펑 내린 눈으로 가득했고, 태어나서 눈을 처음 본 추자들은 신기해하고 즐거워했지만 친싱장과 겨울을 한번 보낸 경험이 있던 장녀는 드디에 올게왔구나 하는 썩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친실장과 장녀는 아주 잠깐 눈을 보면서 허탈해 했을 뿐, 금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장녀는 집 주변의 배수로와 집 밖에 파놓은 보존식 굴 주변의 눈을 플라스틱 수저로 치우기 시작했다. 눈이 내릴때마다 이렇게 치우지 않으면 금새 꽝꽝 얼어붙을 것이고, 일단 그렇게 굳으면 실장석의 완력으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눈이 내리면 내리는 대로 바로바로 치워야 했다. 반면 친실장은 엄지에게 옷을 입힌 다음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하나 쥐게 하고, 골판지 지붕 위로 올려보내고는 골판지 집 위쪽 경사면의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친실장은 경험상 눈이 막 내린 직후가 가장 중요한 기회라는것을 알고 있었다.

 

 한번 눈이 내린 직후에 바로바로 치우지 않으면 밖에 파둔 비상식 구덩이나 배수로가 얼어붙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은 물론이고, 지붕이나 인접한 위치의 눈을 바로바로 치워야 집이 무너지는 일을 피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지붕위에 엄지를 올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자실장의 무게로는 지붕이 무너질수도 있었기에 지붕 위에 쌓인 눈이 녹거나 얼기 전에 눈을 치우는 역할을 맡기는 것은 엄지가 최적이었다. 눈이 녹으면 아무리 비닐로 보강했다 해도 물이 고여 골판지가 썩거나 물러지기 쉬웠고, 한번 젖은 골판지는 그 시점에서 보온성을 발휘할 수가 없었기에 이것은 아주 중요한 작업이었다. 엄지가 작은 몸으로 레치 레치를 연발하며 지붕위의 눈을 조심조심 치우는 동안, 친실장은 집 위쪽 경사면의 눈을 좌우로 비질하듯 나무가지로 치워내고 있었다. 경사면에 쌓인 눈도 방치하면 얼어붙은  얼음덩이가 지붕을 뭉개버릴 수도 있고, 얼지 않아도 눈이 쌓이게 방치했다간 눈사태가 일어나서 집 째로 매몰될 수도 있었기에 친실장과 엄지, 그리고 장녀는 추위를 무릅쓰고 밖에 나와서 눈을 치우거나, 눈막이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마리의 철없는 추자 자실장들은 밖의 눈이 그저 신기한지 밖에 나와 눈덩이를 만지며 노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사실 애초에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자실장에게 한겨울에 맡길만한 일이 있을래야 있을 턱이 없긴 했다. 지붕 쪽 작업은 엄지처럼 가볍지 않으면 할 수가 없고, 바깥의 눈을 치우는 중노동을 태어난지 얼마 안된 자실장들이 버틸리가 없었다. 그나마 오녀인 엄지와 장녀는 경험이라도 있지만, 가을에 낳은 차녀, 삼녀, 사녀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일을 해본적이 었었다. 운치굴에 남아있는 육녀 엄지는 몸이 약해서 이런 작업에는 쓸 수도 없었다. 그러니 추자 자실장들이 저렇게 집 근처에서 노느라 일하는데 치근덕거리지 않는 것이 친실장에게는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갓 태어난 자실장들이 흔히 그렇듯, 걸핏하면 마마를 찾고, 마마에게 어리광피우는것은 흔한 일이었으니까.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때쯤, 간신히 눈을 다 치우고 비탈에 눈막이를 만든 친실장은 눈을 말끔하게 다 치워낸 지붕 위에 완전히 체력이 방전되어서 대자로 뻗어 있는 엄지를 보곤 살풋 웃으며 말했다.

 

 

 

 

"잘한데스. 역시 나의 자인 데스요"

 

 

 

 

하지만 엄지는 체력을 밑바닥까지 끌어낸 듯 완전히 지쳐 제대로 말도 못했다. 그저 치이- 하는 작은 소리만 낼 뿐. 친실장은 그런 오녀 엄지를 조심스럽게 잡아 품에 안고는 집에 들어가며 말했다.

 

 

 

"오늘도 열심히 일했으니 하루 더 마마랑 같이 자는데스. 먹이구하러 가는건 하루 쉬어도 되는데스."

 

"마마...조금만 쉬면 되는레치. 더 할수 있는 레치이."

 

"안되는 데스. 쉴땐 쉬어야 하는 데스. 오늘 밥 구하기는 육녀 엄지를 데리고 가면 되는 데스요. 오늘은 장녀랑 집에서 편히 쉬는 데스우."

 

 

 

 

친실장은 밖에서 내내 일하느라 차가워진 엄지의 몸을 쓰다듬고는, 아직도 밖에서 노느라 정신팔린 차녀와 삼녀, 사녀를 슬쩍 넘겨보고 난 다음 어젯밤에 먹다 남긴 치킨 부스러기에서 남은 살 몇점을 살살 발라내고는, 엄지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자. 많이 일했으니 오녀도 이걸 먹을 자격이 충분한 데슷."

 

"마마. 정말 먹어도 되는 레치?"

 

"마마가 두말하는거 본 데스? 자매들이 보기 전에 얼른 먹는데스."

 

 

 

 

친실장은 엄지가 쪼물락 쪼물락 거리면서 치킨 살 몇점을 먹는 것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엄지가 주어진 살점을 다 먹자, 친실장은 자실장들이 오기 전에 주변을 정리했다. 자실장들도 자신이 자들이었고, 충분히 나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실장보다는 엄지에게 더 기대가 가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본래라면 별다른 대접도 못받았을 엄지였건만, 지금은 오히려 자실장보다도 더 큰 기대와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저 대놓고 드러낼 수 없을 뿐이었다. 장녀는 애초에 순하고 착해 빠진데다 얼마전까지 자기가 엄지였다고 믿었기에 엄지 오녀와 육녀에게 자매간의 정이랄까 그런 태도가 보였지만, 차녀와 삼녀, 사녀 자실장들은 엄지를 거의 자매로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친실장이 철권으로 다스렸기에 건드리지 않을 뿐이었다.

 

하물며 오녀와 육녀는 태어나마자 친실장 스스로 독라로 만들었던 탓에 장녀를 빼면 자실장자매들 사이에서는 그냥 노예 취급 당하는 판국이었다. 그런 마당에 이제와서 개념이고 일 잘한다고 엄지를 대놓고 우대하면 집안에 분란만 가져올게 뻔했다. 월동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이 가족 내부에서 불화가 터지는 것임을 잘 아는 친실장은 곧잘 자실장들의 눈을 피해 몰래 몰래 엄지들에게 배려를 해주곤 했다. 사실  같은 자라고 해도 먹고 자는 똥싸는 기계랑, 이래저래 먹이수급에도 도움을 주고 눈치우는데도 쓸모를 어필하는 엄지를 서로 놓고 냉정하게 생각하면 친실장의 이런 태도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나마 장녀의 정서치료에 도움이 되니 망정이지, 그것도 없었으면 추자는 일찌감치 내치고, 오래전에 엄지오녀와 육녀, 그리고 장녀를 자로서 남겼을 것이었다. 친실장은 정리를 마친 다음, 장녀와 자실장을 집안으로 불러들여 저녁밥을 먹었다. 오녀엄지가 텐카츠 부스러기를 들고 운치굴에 있는 육녀에게 갖다주는 동안, 자실장들은 친실장이 나눠준 저녁밥을 보고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마마 이건 너무 딱딱한 테츄!"
"냄새도 구릿구릿한 테치. 운치같은 테츄"

 

 

 

 

친실장이 자실장들에게 나눠준 저녁밥은 말린 멸치였다. 정확하게는 국거리에 들어간 멸치였지만, 그것을 매번 꾸준히 골라내어 햇빛에 잘 말려둔 것이었다. 친실장은 이제 눈도 내렸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보존식에 입맛을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서 평소 먹던 아마아마한 것들 대신 마른 멸치를 밥으로 준 것이었다. 장녀는 군말 안하고 자기 몫을 먹고 있었지만 자실장들은 그저 우마우마한 튀김이나 생선, 고기나 부드러운 것만 먹다가 말린 멸치를 먹으려니 입에 맞지도 않고,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마는 엄하게 자실장들을 타이르며 말했다.

 

 

 

 

"이제 눈씨가 온 데스. 눈씨가 더 자주 오고 더 추워지면 마마도 먹이를 구하러 매일 나갈수가 없는데스."
"그러면 그때는 보존식을 먹으면서 버텨야 하는 데스."


"그래도 마마 이건 밥이 아닌 테츄"


"아닌데스. 그것도 밥인 데스. 안 먹으면 이따 새벽에 밥을 구해와도 밥없는데스. 그래도 좋은 데스?"

 

 

 

 

그말을 들은 자실장들은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말린 멸치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셋 다 그다지 맛이 없는지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친실장의 말을 거역하긴 어려웠던지 그래도 자기 앞에 놓여진 말린 멸치를 주섬주섬 입안에 넣고 있었다. 그렇게 저녁식사가 끝나자, 친실장은 자실장들과 장녀를 모아놓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는 사실 친실장이 어줍잖게 알음알음 들었던 인간들의 동화나 이야기를 대충 짜맞추어 즉석에서 지어낸 거였지만,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자실장에게는 제법 즐거운 오락거리였다. 친실장이 이번에 이야기거리로 삼은 것은 양치기 소년 이야기였다. 내용은 학대파 닝겐이 나타났다고 거짓말하던 자실장이 정말로 학대파 닝겐이 왔는데도 친실장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해서 도망가지 않아 일가실각당하고, 최후에는 어미가 유령이 되어 혼자 남는 자실장 곁을 원귀가 되어 떠돈다는 내용으로, 양치기 소년 이야기에 비하면 어딘지 모르게 허술하고 얄팍한 구성의 이야기였다. 적당하게 실장석 기준으로 어레인지된 이야기였지만, 자실장들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친실장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자. 이렇게 해서 거짓말을 하던 자실장은 어미와 자매를 모두 잃고, 원귀가 된 어미에게 끝없이 고통받았다는 이야

기인 데스. 마마를 속이면 벌받는 데스요. 잘 기억하는 데스!"


"와타시 마마를 속이지 않는 테치! 이야기 듣고 있었는 테츄!"
"그치만 너무 무서운 유령인 테치..."
"학대파 닝겐 무서운 테에에..."

 

 

 

 

물론 자실장들은 아직 어려서 내용의 절반도 다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학대파의 무서운 장면이라거나 원귀가 되어 찾아오는 부분에 대한 서술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그래도 친실장은 그것을 탓하지는 않았다. 당장은 저래도 몇번이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다보면 알아들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옛날이야기를 통해서 하면 안되는 일이 무엇이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간접적이나마 배울 수 있을 것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친실장은 골판지 둥지의 문을 살짝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눈은 더이상 내리진 않았지만, 코끝으로 들어오는 냉기가 어제보다 더 싸늘했다.

 

이대로라면 머지 않아 집 안에서 꼼짝없이 월동해야 할 날이 머지 않을 터였다. 친실장은 더 추워지기 전에 먹이를 가능한 한 더 많이 구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장녀에게 오녀 엄지를 잘 보살피라고 맡긴 다음, 운치굴에서 육녀 엄지를 꺼내 준비를 마치게 하고는 어제와 똑같이 나갈 채비를 했다.

 

육녀 엄지는 몸이 약해서 본래라면 겨울에는 잘 데리고 나가지 않고 운치굴 관리를 주로 맡기지만, 오늘은 오녀 엄지가 눈을 치우느라 과로했기에 육녀를 데리고 나가려는 것이었다. 육녀 엄지 역시 체력적으로 너무 약하기는 했지만 오녀 엄지 못지 않게 마마와 같이 다닌 경험이 꽤 많았기에 별 문제는 없었다. 사실 엄지가 먹이구하기를 하러 갈때 하는 일은 마마의 따뜻한 두건 속에서 졸지않고 주변을 잘 살피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육녀 역시 오녀만큼 먹이구하기 경험은 많으니 걱정은 없었다. 잠시 후 육녀 엄지가 나갈 채비를 마치자, 친실장은 자실장들에게 얌전히 집을 장녀랑 잘 지키라고 말하고는 집 밖으로 나섰다.

 

친실장이 먹이를 구하러 밖으로 나간 후, 자실장 셋은 골판지 바닥에 앉아서 조금 전에 마마가 해준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도란도란 자매들끼리 떠들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장녀는 오녀 엄지를 조심스럽게 한켠에 내려놓고는, 휴지와 신문지조각을 주면서 말했다.

 

 

 

 

"오녀차. 이걸 덮고 있는 테츄.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는 테치."

 

"장녀 오네차.. 어디가는 레치.?"

 

"마마가 방금 부른 테치. 오녀차도 들었을 터인 테츄."

 

 

 

 

그 말을 들은 오녀 엄지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장녀를 바라보았다. 마마는 먹이를 구하러 나갔고, 이 안에는 차녀랑 삼녀, 사녀, 그리고 장녀밖에 없었다. 설령 마마가 문밖에 있었다 해도, 마마가 뭐하러 밖에서 우릴 부른다는 말인가? 오녀 엄지는 장녀의 옷깃을 조그마한 손으로 붙잡고는 말했다.

 

 

 

 

"장녀 오네차. 정신차리란 레치. 그런 소린 듣지 못했다는 레치. 잘못들은거 아닌 레치?"

 

"조금전에 분명히 마마데스~ 하는 소릴 들은거 같은테치. 정말 못들은 테치?"

 

"마마는 먹이 구하러 내려간지 오래된레치. 그리고 마마가 외쳤으면 자매들도 다 일어섰을 것인 레치. 바람소리를 잘못들은거 아닌 레치?"

 

 

 

 

장녀는 오녀 엄지가 걱정하는 듯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시선을 느끼고는 자리에 털썩 하고 주저앉아 방안을 둘러보았다. 엄지 말대로 차녀와 삼녀, 사녀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마마가 정말로 부르는 소리를 냈으면 벌써 다들 일어나 마마를 외치며 문으로 달려갔을 것이었다. 장녀는 다시한번 귀를 기울여 주변 소리를 들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귓가에 들리는 건 눈발이 날리는 소리와 바람에 휩쓸리는 윙윙 하는 소리가 다였다. 장녀는 자신을 걱정하는 엄지를 살짝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와타시가 잘못 들은 모양인 테치. 요즘 지친 모양인 테츄."

 

"장녀도 오늘 힘낸거 아는 레치. 신문지 장녀도 같이 덮는 레치이."

 

 

 

장녀는 엄지 오녀를 살갑게 끌어안고는 신문지와 화장지를 몸에 두르고는 자리에 누웠다. 성체실장이나 다르지 않은 큰 몸에서 품어져 나오는 체온은 엄지를 금방 따듯하게 해주었고, 오녀 엄지는 졸린지 연신 눈가를 손으로 부볐다. 지붕의 눈을 작은 몸으로 치워냈으니 피곤할 만도 했건만, 장녀가 걱정되는지 오녀 엄지는 계속 작은 목소리로 장녀를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장녀는 그런 엄지를 바라보면서 잠이 들 때까지 자그마하게 뎃데로게~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엄지가 잠들자, 장녀는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면서 마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자실장들과 다르게, 장녀는 이미 한번 월동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에 익숙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매끼리 떠들던 자실장들도 밤이 깊어지면서 내려가는 기온에 따뜻한 것을 찾아 장녀의 품 안으로 들어왔다. 귀여운 여동생들이 몸을 움찔거리면서 자신의 품 속으로 부비는 것은 장녀에게 어딘가 잊혀진 듯한 그리운 감상을 느끼게 하곤 했다. 장녀는 엄지가 자실장들에게 깔리지 않게 주의하면서 자실장들을 자신의 배 아래로 모아 휴지를 뭉쳐 덮어주었다. 장녀의 체온에 금새 덥혀진 열은 휴지에 의해 따뜻하게 보온이 되어, 자실장들이 금방 잠들게 만들었다. 장녀는 문득, 굉장히 오래전에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행복하고 그리운 느낌을 받으면서, 살풋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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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참 후, 자실장들의 울음 섞인 소리에 장녀는 잠에서 깨었다. 일어나 보니 자신을 둘러싸고 삼녀와 차녀, 사녀가 훌쩍이고 있었다.

 

 

 

 

"마마가 오지 않은 테츄우!!"
"마마 어디간 테에에엥!!"

 

 

 

 

장녀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집 안에는 마마가 보이지 않았고, 자실장 셋과 엄지밖에 없었다. 밖을 내다보니 이미 해는 높게 떠올라 있었다. 그러나 마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장녀도 깜짝 놀랐지만, 금새 마음을 바로잡고 자실장들을 달래었다.

 

 

 

"너무 놀라지 마는 테치. 마마는 금방 돌아올 것인 테치. 우는거 뚝하는 테츄!"

 

 

 

자실장들은 마마가 평소에 오던 시간에 안 오자 놀란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동안 마마가 늦은 적은 몇번 있었지만, 자실장들이 태어난 이후에는 그런 적이 없다보니 울음을 터뜨린 모양이었다. 장녀는 가끔 마마가 먹이구하느라 이렇게 늦는 일이 있었다는 말을 하며 자실장들을 토닥여 주었다. 가까스로 울음을 그친 자실장들은 장녀와 함께 마마를 기다렸다. 뒤늦게 잠에서 깬 엄지와 배고파하는 자실장들에게 보존식 구덩이에서 텐카츠 부스러기와 말린 바나나 안주 조각을 꺼내어 먹이면서 오지않는 마마를 걱정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해가 다시 지고, 밤이 되어도, 마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집 안에 먹을것은 충분했기에 겨울 내내 먹이 구하기를 못하더라도 월동에는 아무 지장도 없었다. 그러나 마마가 없는 집 안은 외롭고 슬펐기에, 자실장들은 눈물이 그칠 새가 없었다. 긴 밤이 지나 다시 새벽이 되어가자, 장녀는 마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것을 직감하고, 마마를 찾으러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녀는 마마가 그랬듯이 두건을 벗고, 뒷머리를 그 안에 포개 넣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익숙치 않았지만, 오녀 엄지가 있었기에 그럭저럭 채비를 마칠 수 있었다. 장녀는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자신의 발아래에 옹기종기 모인 자실장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마마를 찾으러 가볼 것인 테치. 집 잘 지키고 있는 테치!"

 

"마마아. 마마아아아."
"조심해서 다녀오시란 테츄!"
"집 잘 지키고 있겠는 테칫!"

 

 

 

 

차녀는 아직도 울고 있었지만, 차녀보다 어린 삼녀와 사녀는 눈물을 훔치면서 장녀를 전송했다. 골판지 집의 입구를 닫고, 장녀는 누름돌을 올려 문을 막고는 골판지 둥지를 나섰다. 눈은 몇일 전 이후로 더는 내리지 않았지만, 산비탈 경사로 사이사이의 둔덕이 메워지고, 작은 실개천도 하얀 눈으로 덮히고, 마마가 자주 다니던 길도 눈에 완전히 파묻혀 경사면 전체가 완전히 평평해져 있었다. 마마가 먹이를 구하러 나갈 때, 장녀는 자주 따라가지 못했지만, 친실장이 자신이 위험에 처하거나 슬픈일을 당할 때를 대비해서 장녀에게 가르쳐준 것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길목과, 먹이를 구하는 주요 장소에 대한 것들이었다. 분명 장녀는 그것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이 모든것을 덮어버린 지금, 그 기억들은 거의 쓸모가 없었다. 구릉도, 둔덕도, 비탈 사이사이의 작은 틈바구니들도 모조리 눈에 덮혀 버렸기에, 장녀는 무작정 비탈길을 따라 내려갈 뿐이었다. 그래도 오녀 엄지는 자주 친실장과 먹이를 구하러 나갔기에, 눈 위로 튀어나온 나무의 마른 잡목나무 가지를 참고로 마마가 자주 다녔던 길목을 알려주었고, 장녀는 엄지의 안내를 받으며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여기가 주로 마마가 다니던 길인 레치!"

 

"어떻게 아는 테치?"

 

"나무를 보면 아는 레치. 매번 봐서 익숙한 레치."

 

 

 

 

장녀는 엄지가 가리키는 대로 걸으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기 시작했다. 엄지에게도 녹색으로 보이는 게 있으면 뭐든지 바로 말하라고 하고는, 하얀 눈밭 사이에서 뭔가 움직이는게 있을까 날카롭게 주변을 돌아다보면서 아래로 아래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새하얀 눈 외엔, 자신과 엄지 말고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를 걸었을까. 어느새 장녀는 비탈이 끝나고, 아스팔트 도로가 나오는 근처까지 내려왔다. 이 도로를 건너면, 마마가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던 인간이 사는 곳이 나올 것이었다. 하지만 장녀는 잠시 주저했다. 친실장이 항상 강조했던, 대낮에 함부로 인간이 사는 곳에 나가지 말라는 말이 장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장녀의 그런 망설임은, 도로 건너편에서 초록빛의 무언가가 펄럭이는 것을 보자 금새 사라져 버렸다. 장녀는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치면서 아스팔트 도로 위를 뛰어나갔다.

 

 

 

"마마! 마마인테치! 마마~!!"

 

 

 

장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셔 최대한 목을 울리게 하는 성체실장 특유의 굵고 낮은 목소리로 간절하게 마마를 부르며 눈앞에 보이는 초록색의 펄럭이는 것을 향해 다가섰다. 두건 안에 있던 엄지가 필사적으로 장녀의 뒷머리를 잡아당기며 가지말라고 했지만, 장녀는 이미 눈앞에 보이는 초록색 천조각이 마마라고 확신에 차 있었다. 장녀는 초록색 천을 향해 미친듯이 다가가면서 계속해서 마마를 외쳐대었다. 장녀의 외침은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 위를 지나 사방으로 퍼졌다. 하지만, 장녀의 외침에 화답하는 것은 마마의 다정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멍!"

 

 

 

순간, 장녀는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녹색 천 조각은 맞았다. 하지만 그건 마마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녹색의 옷을 입힌 삽살개 한마리였다. 장녀는 완전히 겁에 질려, 되돌아서서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추위에 계속 노출되었던 다리가, 긴장이 겹친 것에 더해져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고, 장녀는 그대로 달려가던 방향 그대로 앞으로 넘어져 바닥을 굴렀다.

 

 

 

"테챠아아앗!"

 

"레챠!"

 

 

 

그리고 두건 안에서 필사적으로 장녀의 뒷머리를 잡아당기던 엄지 오녀는, 장녀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마치 캐터펄트 투석기가 쏘아지듯, 뒷머리가 그대로 관성에 의해 위로 치켜올라가면서 그대로 딸려올라가 장녀보다 조금 더 앞으로 공중을 살짝 날아가 개밥그릇 속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장녀는 엄지의 비명을 듣지 못했다. 눈앞에 보이는 멍멍씨가 자신을 물어뜯을 것만 같은 공포가, 이 소란으로 인간이 나오기라도 하면 어찌될지, 그리고 자신이 여기서 죽으면 골판지 둥지에서 남겨질 어린 자매들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걱정이 장녀의 머릿속을 휩쓸고 있었다. 장녀는 넘어지자마자, 스스로의 공포와, 남겨진 자실장에 대한 걱정에 곧바로 일어나 정신없이 도망치듯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아련하게 엄지 오녀가 외치는 듯한 외마디 비명 소리가 났지만, 그것을 인지할 여유가 장녀에겐 없었다. 장녀는 그저 멍멍씨로부터 도망가는 것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도로를 가로질러, 왔던길을 따라 골판지 둥지가 보이는 위치까지 달려오고나서야, 장녀는 뜀박질을 멈추고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골판지 둥지에 다가서면서, 골판지 입구로 이어진 발자국들을 보고는 혹시 마마가 그 사이에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 발자국은 장녀가 마마를 찾아 걸어나간 흔적이었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린 장녀의 머릿속은 마마를 만나게 된다는 행복회로로 가득차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마마가 돌아왔다고 생각하며 골판지 둥지로 다가가 문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마마!!"

 

 

 

하지만 골판지 둥지 안에는 마마가 없었다. 그저 안에 있던 자실장 세마리가 걸어나와 장녀를 반겨줄 뿐이었다. 자실장들은 장녀에게 마마를 찾았냐고 물었지만, 장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골판지 안쪽을 구석구석 살피면서 마마를 찾을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성이던 장녀는, 발치에서 울며 보채는 자실장들 탓에 간신히 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장녀 오네차아아앙. 왜이러는 테치."
"테에엥. 테에에에엥. 마마! 마마!!"
"마마 찾은 테치? 마마 어디있는 테치!!"

 

 

 

 

장녀는 울고불고 난리가 난 자실장들을 달래면서 말했다.

 

 

 

"미안한 테치. 인간이 사는 근처까지 갔지만 멍멍씨가 나오는 바람에 급히 도망쳐 온 테치."

 

"그럼 마마는 못찾는 테츄?"

 

"아닌테치. 밤이되고 멍멍씨도 인간씨도 잠들면 다시 찾으러 갈것인 테치. 그러니까 울지말고 꾹 참는테치."

 

"오네차 알겠는 테치"
"울지 않는 테치!"
"오네차 울었더니 배 꼬륵 꼬륵 하는 테치...."

 

 


장녀는 어린 자실장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어 준 다음, 보존식 구덩이를 덮은 돌을 치우고 먹을것을 꺼내어 자매들에게 밥을 먹일 준비를 했다. 마마가 가르쳐준 대로 납작한 돌과 길쭉한 돌을 사용해서 땅콩과 아몬드를 콩콩 찧어 먹기좋게 부수었다. 그리고 각자 알맞게 나눠주자 자실장들은 게눈 감추듯 그것을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배가 불러서 안심이 되는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장녀는 그런 자매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들어 한쪽에 모아 놓고, 신문지와 휴지조각을 차녀와 삼녀, 사녀의 몸 위에 덮어주고는 날이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해가 지고, 눈이 장밋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하자, 장녀는 이번에는 마마를 꼭 찾겠다고 다짐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 장녀가 준비를 마칠 때 쯤, 밤은 어느 순간인가부터 골판지를 어둑어둑 채워갔다. 비탈길 위로 둘러쳐진 성곽이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창백한 달빛이 내리쬐는 밤하늘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장녀는 잠든 자매를 뒤로 하고, 비탈길을 다시 내려가면서 마마가 어떤 일을 당했을지를 떠올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마는 먹이를 구하러 갔다가 차에 치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학대파 닝겐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조금 전처럼 멍멍씨에게 잡혔을지도 몰랐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수 없었다. 장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려가다가, 문득 오녀 엄지가 마마가 자주 다녔던 곳이 어딘지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제서야 두건속에 엄지를 넣고 갔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말을 걸었다.

 

 

 

"오녀 엄지챠. 마마가 자주 가는 곳이 어딘지 기억나는 테치?"

 

"......."

 

 

 

하지만 오녀 엄지차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두건 속에 엄지차는 이미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었다. 조금 전 멍멍씨를 만났을 때, 장녀가 넘어질 때의 관성으로 하늘을 날아 개밥그릇 속으로 떨어졌지만, 장녀는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알수도 없었다. 몇번이고 장녀는 두건속에 있을 엄지에게 질문했지만, 대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장녀가 두건속을 더듬어 보고 나서야, 엄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는 큰 소리로 엄지를 불렀다.

 

 

 

 

"엄지 오녀차아아아!! 어디있는 테치~!!"

 

 

 

 

장녀의 목소리가, 산속에 잠들어 있는 창백하게 질린 달빛 속으로 헤엄치듯 흘러나갔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 속에서, 엄지를 찾는 목소리는 차츰 잦아들어갔지만, 오녀 엄지의 대답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장녀는 문득 엄지 오녀차를 멍멍씨를 만난 그때, 멍멍씨를 피해 도망치던 그때, 필사적으로 외치던 소리가 엄지 오녀차의 것이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장녀는 크게 소스라쳤다. 엄지를 두고 와버린 죄책감과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흐르면서 장녀는 저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엄지차아아아!"

 

 

 

 

장녀는 크게 엄지를 부르면서, 산비탈을 빠르게 내려가 도로를 가로질러, 멍멍씨를 보았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것은 멍멍씨의 빈 밥그릇 뿐. 멍멍씨도, 엄지도 보이지 않았다. 장녀는 그만 색눈물이 왈칵 밀려드는 것을 느끼면서, 동시에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마마가 곧잘 말해주던 슬픈 기억이 어딘가 장녀의 위석을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었다. 아직 골판지 둥지에는 어린 자매들이 남아 있었고, 살았을지 죽었을지 알수없는 마마도 찾아야만 했다. 장녀는 마마가 음식을 구하러 갔다는 인간들의 집들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늦은 밤. 인적이 드물어진 골목과 길가에는 실장석의 입장에서는 어디서 비추어지는지 모를 기묘한 빛줄기가 도로를 끝없이 비추었고, 빛이 미치지 못하는 어둠 속을 장녀는 걸어가면서 소리죽여 마마를 불러보곤 했다. 그러나 마마를 부르는 소리는 적막한 밤거리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지기 일쑤였다. 장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걷다가도 귀를 세워 주변을 가만히 들어보기도 하고, 벽에 귀를 대고 어딘가 놓친 소리라도 있을까 싶어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항상 늘 듣던, 어딘가 익숙한 마마의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러면 장녀는 용수철이 튕겨오르듯 팔짝 뛰어오르면서 소리가 났다고 생각했던 방향으로 달려가면서 다시 한번 크게 마마를 부르며 외쳤다.

 

 

 

"마마~!! 여기인테츄우~! 마마!"

 

 

 

그러나 그 때마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마마가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몇번이나 반복했고, 결국에는 완전히 기진맥진하고 절망에 빠져 주저앉았다. 마침내, 장녀가 마마를 찾는 것을 포기했을 때에는 이미 하룻밤을 꼬박 새고도 모자라 아침해가 서서히 뜨고 있었다. 마마가 더이상 살아있지 않다고 현실을 받아들인 장녀는 어린 자매들이 기다리고 있을 골판지 둥지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멀리 걸어나온 상태였다. 게다가 아침이 되면서, 사람들이 거리에 조금씩 나다니고, 차들도 도로를 자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밤새 마마를 찾으며 돌아댕긴 탓에 발도 부르튼 데다 심하게 지쳐 있던지라, 장녀는 일단 다시 밤이 될 때까지 사람의 눈을 피해 쉬기 위해 몸을 숨길 만한 곳을 찾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바구니는 그런 면에서 가장 적절한 곳이었다. 팔달구 내의건물들은 연식이 오래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람이 도저히 지나다닐수 없을 정도로 건물과 건물의 외벽이 맞닿은 좁은 틈바구니들이 많았다. 그리고 제법 오래된 건물들, 특히 장사가 안될 정도로 유동인구수가 적은 곳은 오랜기간 임대가 되지 않아 절반쯤 방치한 듯한 건물도 팔달산 인근엔 몇군데 있었다. 장녀는 그런 곳들 중, 적당한 곳을 하나 찾아 숨어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장녀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한겨울에 아무리 낮이라곤 해도 응달진 콘크리트 바닥에서 잠을 자기에는 너무나도 추웠던 탓이었다. 마치 뼛속 깊이 얼어붙는 듯한 냉기가 바닥에서 그대로 올라왔고, 골판지 집과는 달리 사방에서 바람이 들이치는 통에 장녀는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었다. 어쩌다 간신히 새우잠 자듯 껌뻑 잠이 들어도, 이번에는 머릿속에 마마를 찾지 못한 슬픔. 엄지에 대한 미안함, 멍멍씨와 만난 무서운 장면, 마마가 죽어가며 자신에게 도움을 처하는 상상이 자꾸만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고, 그때마다 장녀는 오한이 난듯 팔다리를 덜덜 떨며 깨어나곤 했다. 그렇게 졸음에 견디다 못해 간신히 선잠이 들었다 깨기를 몇번, 장녀는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녀의 다리는 이미 막대기마냥 빳빳해졌고, 마음은 죄책감과 공포로 이미 약해져서 목소리조차 나오기 힘들었다. 문득 장녀는 자신 역시 마마처럼 갑자기 사라지듯이 이렇게 고독 속에서 혼자 외롭게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독에 대한 두려움은 장녀에게 일순 강한 활력과 원기를 얻게끔 만들었다. 골판지 둥지엔 아직도 장녀만 믿고 기다릴 어린 자매들이 남아있었다. 장녀는 추위로 인해 절반쯤 동상 직전인 다리를 절뚝이면서 둥지를 향해 계속해서 걸음을 빨리했다. 장녀는 또 다시 새벽이 다 되고 나서야 골판지 둥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골판지 둥지의 문을 열자마자, 반쯤은 배고픔에 지치고, 반쯤은 걱정과 슬픔에 지친 어린 자실장들이 장녀를 맞이했지만, 장녀는 그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잠자리로 간신히 걸어가 잠에 빠져들었다.

 

장녀는 아주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잠을 잤다. 그 잠은 도저히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수렁과도 같았다. 잠이 드는 중간 중간, "배고픈 테치이" "장녀 죽지마는 테챠" 같은 소리가 귓가에 들렸지만, 장녀는 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어디선가 낮고 희미하게 "마마데후" 하는 울림이 장녀의 마비와도 같은 깊은 수면상태를 깨뜨렸고, 장녀는 용수철이 튕기듯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눈앞에는 어린 자실장 자매들이 자신을 부여잡고 색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울고 있을 뿐이었다.

 

 

 

 

"데끕. 데큽. 장녀오네차아아아~ 죽어버린 줄 알았는 테챠!"
"테에엥 오네차 죽지마는 테츄." 

 

 

 

 

장녀는 울고 있는 삼녀와 사녀, 차녀를 둘러보면서 생각했다. 조금전에 들린 마마의 목소리는 꿈이었을까? 아니다. 분명히 마마의 목소리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마마데스가 아니라, 데후~ 하는 어딘가 공허하고 살짝 끌리는 소리였지만 그건 확실히 마마였을 것이었다. 장녀는 골똘히 생각하면서 주변의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모든것이 확실해졌다. 그 소리는 여전히 장녀의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작고 갸냘프지만, 분명하게 "마마데후" 하는 소리가 들렸고, 곧 그 소리는 장녀의 귀를 통해 손과 발끝까지 저릿저릿 퍼져나가고 있었다. 틀림없었다. 마마가 왔다. 마마가 불렀다. "마마데후!" 하고 말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저기에, 바로 저 골판지 문 너머에서, 아니 골판지 둥지 밖에서 부르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장녀는 그야말로 번개같이 튀어나가서, 골판지 문을 열고 있는 힘껏 마마를 불렀다.

 

 

 

 

"마마! 부른 테츄우우!! 마마!! 장녀 여기있는 테츄아!!"

 

 

 

 

하지만 그 외침에 화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마의 다정한 목소리도, 마마의 호통치는 혼내는 소리도, 마마가 웃는 소리도,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 밖은 그야말로 새하얀 설원 그 자체. 그거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은 눈이 서슬퍼런 창백한 빛만을 뿌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죽음과도 같은 고요함 속에서, 바람이 불어들었다. 마치 이 추운 겨울밤에, 그 누구도 살려두지 않을듯이 울리는 차디차고 위잉위잉하는 바람이 열려진 골판지 문 사이로 불어닥쳤다. 어리디 어린 자실장 자매들은 서로서로 껴안고는 추운테치 문씨는 닫는테치하고 울었지만, 장녀는 그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가면서도 이를 악물고 다시금 크게 외쳐대었다.

 

 

 

 

"마마!! 마마!! 마마악!! 여기있는테치!! 장녀 여깄는 테치이이이!!"

 

 

 

 

그리고 장녀는 대답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눈이 내린 산의 기슭은 죽음처럼, 고독마냥 조용하고 음울할 뿐이었다. 그러자 장녀는 순식간에 두려움이 마음속으로 짖쳐 들어옴을 느꼈다. 장녀는 뭐에 홀린것마냥 냅다 거칠게 골판지 둥지의 문을 닫고, 안의 걸쇠를 걸어 단단히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몸을 와들와들 떨며 자신의 잠자리에 철퍽 하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장녀는 생각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마마가 날 불렀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마마가 온 건가? 꿈인가? 장녀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작디작은 실장석의 뇌로 떠올린 유일한 가능성은, 장녀로 하여금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마마가 죽은 거인테치. 구하러 오지 않아서 원망한 것일테치. 그래서 찾아와 부르는게 틀림없는테치.'

 

 

 

 

장녀가 떠올린 가능성은 정말 유치한 여름방학 귀신만담 같은 소리였지만, 장녀에게는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인것처럼 느껴졌다. 이미 한번 과거에 자매들이 몰살당했던 슬픈 과거로 인해 파킨할 뻔했던 것을 유아퇴행으로 버텨내었던 장녀였기에, 장녀의 정신상태는 아닌말로 좋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런데다 마마와 자신과 같다고 여긴 엄지 오녀차까지 잃게되자, 장녀의 정신은 이미 막다른 외길에 선 거나 다를게 없었고, 여기에 마마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까지 들려오자 그것이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한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밥을 먹으면 운치를 싸는게 당연하듯이 마마는 이 추운 겨울밤 어디에선가, 좁은 골목이던 눈덮인 들판 속에서 죽어가면서 구하러 오지 않는 자들을 원망했을 지도 모른다고 장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마마는 죽자마자 좁디좁은 신체를 벗어나, 자유로워져서 골판지 둥지로 돌아왔고, 계속해서 마마라고 외치면서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었다. 그게 자들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에서일지도 모르지만, 장녀는 그게 자들이 구하러 오지 않은 원망일 거라고 믿고 있었다. 장녀는 골판지 둥지 근처에서, 혹은 골판지 둥지 안 구석 어딘가에서 마마가 자신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 느껴진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믿기 시작한 것들이 장녀를 강하게 압박하고, 두려움과 공포를 끝없이 증식시켜 장녀가 이자리를 당장 박차고 도망치고 싶게 만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 추운 겨울에. 결국 장녀는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었다. 절대로, 그리고 앞으로도 밖으로 나갈 방법은 없을 것이었다. 이 겨울이 다 끝나거나, 마마의 시체라도 찾아 사과하고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기라도 하지 않는 한, 마마는 계속해서 이 둥지 근처를 맴돌을 것이었다.

 

 

길고 긴 밤이 끝나고, 동이 터오면서 햇빛이 눈 위를 비추어 밝은 반사광이 골판지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자, 장녀는 비로소 안정을 다소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내 굶다시피 해서 기운없이 널브러진 자실장 자매들을 알아차리고는 보존식 구덩이에서 먹을것을 꺼내주기 시작했다. 거의 이틀 넘게 아무것도 못 먹고 울음으로 밤을 지새다시피했던 자실장들은 말린 멸치에도 걸신들린듯이 달려들어 데찹 데찹 소리를 내며 먹기에 바빴다. 장녀 역시 모처럼 자매들과 같이 식사를 하며 배를 채웠고, 배불리 먹은 자실장들은 곧바로 지친 몸을 바닥에 뉘이고는 그대로 쓰러지 듯 잠들어 버렸다. 장녀는 그런 자실장들을 보면서,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어디선가 죽었을 터인 마마를 떠올리면서 괴로워하며 골판지 둥지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밤이 되자 장녀는 다시한번 공포에 사로잡혀 골판지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지난 밤의 그 무시무시한, 마마가 부르는 소리가 어디서 나지 않을까 싶어 귀를 기울이며 골판지 이곳저곳을 돌아댕겼다. 그러다가 장녀는 자신이 혼자가되었음을 자각했다. 둥지 안에는 자기 말고도 어린 자실장 자매가 세마리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자실장이었다. 그것도 태어난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아이들. 어린 아이들은 의지할 상대가 항상 필요했다. 그렇기에 자실장들은 장녀에게 기대었다. 하지만 장녀는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가? 아무도 없었다.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마마는 여기에 없었다.

 

 그나마 정신적으로나마 잠시 자신을 이끌어주고 도와주던 오녀 엄지도 잃어버렸다. 장녀 자신에게 남은 것은 어린 자실장 세마리 뿐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기댈 곳이 없는 자신은,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었다. 결국 혼자가 된 것과 같았다. 겨울 내내 자신은 기댈 곳 하나 없이 혼자일 것이었다. 그리고 고독은, 실장석이 가장 크게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위석은 이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를 만들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도 아니면 인간에게 메로메로 하라고도 손짓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녀는 둘 중 어느것도 고를 수가 없었다. 어린 자매가 뻔히 있는데 자를 가지면 마마가 웬지 화낼것만 같았고, 인간에게 메로메로하는 것은 어릴적부터 단호하게 가르쳐온 마마의 말 때문에라도 더더욱 그럴수가 없었다. 지금도 죽은 마마가 원귀가 되어서 찾아와서 괴롭히는데, 마마의 분노를 사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밤을 지새우던 장녀는 결국 피곤에 지쳐 자리에 앉아 꾸벅 꾸벅 졸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하지만 잠든 장녀를 가만 두지 못하겠다는 듯이, 어제의 그 갸날프고 희미한 목소리가 다시한번 장녀의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그 소리가 너무나도 무서웠던 장녀는 그만 저도 모르게 마마를 쫓아내려고 누운 채로 냅다 두팔을 내질렀고, 그 서슬에 잠들어 있던 차녀와 사녀가 걷어차여 잠에서 깨어나 울부짖었다.

 

 

 

 

"뭐인테치! 아픈테치!! 테에에엥!"
"뭐가 등씨를 친 테챠!! 아픈테챠!"
"테에에엥! 무슨일이 난 거인테츄!! 테에엥!"

 

 

 

 

차녀와 사녀가 우는 통에 잠에서 깨어난 삼녀는 무슨 일인지 파악을 못하고는 문 근처에서 울며 칭얼대는 사녀와 차녀를 바라보다가, 장녀를 바라보고는 깜짝 놀랐다. 장녀는 마치 문 너머에 뭔가가 있다는 듯, 계속해서 들어오지 말라고 외치면서 발작적으로 반대쪽 벽에 몸을 들이밀고 벌벌 떨었다. 그것을 본 삼녀는 문 너머에서 무언가가 공격해 왔고, 그것을 장녀가 간신히 막았지만 사녀와 차녀가 다쳤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삼녀는 얼른 사녀와 차녀를 장녀 쪽으로 끌고 온 다음, 문 너머를 향해 장녀와 함께 큰 소리로 외쳤다.

 

 

 

 

"들어오지 마는 테츄! 누구인 테츄카!! 가만두지 않겠는 테챠!!"

 

 

 

 

장녀 역시 이성을 잃고 계속해서 위협 섞인 소리를 내면서 문 밖의 무언가에게 계속 외쳤고, 삼녀 역시 장녀와 함께 밖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삼녀는 밖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금새 안정을 되찾고는 자리에 앉아 아직도 아프다며 우는 차녀와 사녀에게 괜찮다면서 어우러주고는, 아직도 벽에 붙어 문을 향해 노려보기만 하는 장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장녀도 곧 이성을 되찾았다. 자신이 공포로 인해 잠결에 난동을 부린 것을 깨닫고는 아직 어리디 어린 자실장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이모토챠를 돌볼 수 있는 것은 와타시뿐인 테치.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 테치.'

 

 

 

하지만 그런 다짐은 그 때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밤이 찾아오거나, 피곤에 지쳐 깜박 잠이 들까 하면 어김없이 "마마데후" 하는 작고 갸날픈 소리가 장녀의 귓가에 화살처럼 날아와 박히듯 꽂혔고, 그때마다 장녀는 발작적으로 난동을 부리거나 문너머의 누군가를 향해 위협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삼녀도, 사녀도, 차녀도,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장녀처럼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 장녀가 냅다 일어나 문 밖의 무언가에 대해 소리를 지르면, 어린 자실장들도 거기에 맞춰 일제히 위협을 내지르거나, 문을 향해 투분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우고 나면, 어김없이 보존식을 꺼내 밥을 먹고는 그대로 곯아떨어져 잠들곤 하는 것이 반복되곤 했다.

 

하지만 최소한,실장 일가가 이렇게 배불리 먹은 만복감에 잠드는 때 만큼은 가장 평온한 때이기도 했다. 그녀들로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문밖의 무언가에게 받는 공포를 다소나마 잊게 해주는 것이었니까. 하지만 만복감에 의한 스트레스 해소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고, 공포를 잠시동안 잊게 해주는 것에 불과했기에, 공복감이 몰려오고 어느정도 잠을 자고 나면 문 밖 너머의 정체를 알수 없는 뭔가에 대한 공포가 다시금 솟아오르게 마련이었다. 이렇게 한달이 지나게 되자, 장녀는 완전히 밖에 있는 것이 마마의 원망에 의한 유령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고, 자실장들 역시 밖에 있는 무언가가 자신들을 끊임없이 노리고 있다는 강박관념이 뿌리깊게 박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장녀와 자실장들은 골판지 벽 너머에 누가 숨어서 자기들을 노리지 않을까 싶어 벽 여기저기에 귀를 대고 있기도 하고, 벽이나 문을 사이에 두고 그 너머에 누가 있다고 확신하면서 소리치고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 밥을 먹고 식곤증과 피곤에 지쳐 잠이라도 들라치면 어김없이 마마가 장녀를 부른다는 그 소리를 들었다며 장녀가 펄쩍 뛰어 오르거나, 그 서슬에 같이 깬 나머지 자실장들이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위협을 내지르는것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던 중, 결국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장녀는 마마데후- 하는 소리가 또다시 귓가에 들리자마자 냅다 문으로 달려나가 자신을 계속 부르는 마마의 원혼섞인 유령과 끝장을 보려는 생각으로 냅다 문을 열어젖히고는 밖으로 소리를 질렀다.

 

 

 

"마마!! 당장 나오라는 테츄!! 장녀 여기있는 테츄아!!"

 

 

 

장녀가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가서 집 밖에서 소리치며 서성이는 동안, 겨울의 세찬 바람이 열려진 문을 비집고 들어와 운치굴로 덥혀진 둥지 안의 따듯한 공기를 밖으로 몰아내었고, 그 바람에 추워서 잠이 깬 자실장들이 작은 몸을 달달 떨면서 가능 한 한 바람을 피해서 장녀가 항상 누워있는, 운치굴이 가까이에 있는 골판지 모서리 벽 가까이로 꼬물꼬물 움직였다. 그리고, 잠이 덜 깬 어린 자실장들의 귀에도, 어렴풋하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마레휴-"

 

 

 

순간, 자실장들은 얼어붙은 듯이, 시간이 멈춘듯 그자리에 가만히 있다가, 다시한번 같은 소리가, 이전보다 분명하게 속삭이듯 마마데후- 하고 들리자 너나할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양 눈에서 적록의 색눈물을 흘리면서 제각각 환희에 섞인 소리를 지르면서, 문 밖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마마가 왔테치!! 마마아아아!!"
"마마 삼녀인테치!! 어디갔다 이제온테치아아!!"
"마마악! 마마 어디간 테치!! 다시한번 불러달란 테치악!!"

 

 

 

 

어린 자실장들은 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소리가 들려왔던 곳의 건너편 벽 쪽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가면서 마마 마마를 외쳤지만, 그 소리는 장녀가 외치는 소리와, 강하게 부는 찬 바람 소리에 묻혔고, 장녀는 이번에도 대답없이 사라진 마마의 원혼에 두려워하면서 골판지 둥지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방금 전, 어린 자실장들이 뛰쳐나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자리에 가서 다시 앉은 다음, 방금 전 밖에 나가는 바람에 차가워진 실내 공기에 추워진 장녀는 휴지와 신문지 조각을 그러모아 추위를 이기려고 애를 썼다. 그런 직후, 장녀는 깜짝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무언가가, 뭔가 알수없는 것이, 문 밖에서 울어대면서 문을 열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겁에 질린 장녀는 충동적으로 냅다 소리치며 말했다.

 

 

 

"꺼지란테치!! 뭐냔 테치!! 마마 제발 그만 괴롭히란 테치이!!!"

 

 

 

 

그러자, 문밖에서 무언가가,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목소리가 각자의 높낮이로 장녀에게 대답했다. 길고 고통스러운, 동시에 애처롭고 처절한 소리로 말이다. 이미 엄청난 공포로 인해 강박관념에 가까운 망상에 빠져버린 장녀에게, 이 상황은 그나마 장녀에게 남아 있던 이성 한줄기마저 사라지게 할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장녀는 곧바로 저 지독한 소리로부터 숨을 만한 곳을 찾아 골판지 둥지 안을 맴돌면서 계속해서 문 밖에 무언가에 대고 꺼지라고 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밖에 있는 무언가도 계속 울어대면서 끊임없이 끔찍하고 처절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골판지 외벽에 비비고, 두드리면서 골판지 외벽을 돌아댕기고 있었다. 그러자 장녀는 완전히 공포에 질려서는 골판지 안에 있는 1리터짜리 물이 가득 찬 페트병 네개를 미친듯이 짊어지고는, 낑낑거리면서 문 쪽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문 앞에 페트병으로 된 벽을 쌓고, 그것도 모자라서 운치굴에서 운치를 꺼내 페트병여기저기에 바르고는 휴지고 신문지고 할것없이 눈에 보이는대로 다 갖다 붙여서 일종의 벽을 쌓기 시작했다. 마침내  골판지 둥지 입구의 문 안에는 빗장을 건 것도 모자라서 페트병 1리터짜리 4개와 500미리짜리 페트병 두개. 그리고 휴지와 신문지까지 쳐발라서 밖에서 설사 문을 부숴도 못 들어오게 벽을 만들었다. 하지만 밖에 있는 무언가들은 여전히 장녀를 향해 비명섞인 울음을 내었고, 장녀도 계속해서 꺼지라고 외치면서 큰 소리로 위협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밖에 있는 무언가와, 장녀 양쪽 모두, 한번 낮과 밤이 바뀌고 또다시 낮과 밤이 바뀌는 때까지, 계속해서 서로서로 울부짖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밖에 있는 무언가들은 어떻게든 골판지 둥지 안으로 침입하고 싶은 듯, 벽을 무언가로 쿵쿵 찍기도 하고, 바닥면에 해당되는 땅을 파는 소리가 나기도 했으며, 그러는 내내 사방에서 울고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가 계속되었다. 장녀는 장녀대로, 벽에 귀를 대고 밖의 정황을 살피다가 그런 소리가 나거나 땅을 파고 벽을 두드릴 때마다, 똑같이 큰 소리와 비명을 지르고, 벽을 들이받거나 바닥을 쿵쿵 내리치곤 했다. 장녀는 밖에서 나는 모든 소리와 울음섞인 어떤 것에도 무시무시한 비명과 꺼지라고 외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다시 낮과 밤이 한번 더 바뀌자, 장녀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장녀는 잠도 못자고 소리치기만 하느라 밥도 챙기지 못했기에, 기계적으로 보존식을 입에 털어넣고는 이제 더이상 밖에서 아무소리도 안들린다는 것에 안도하자마자 기진맥진해진 장녀는 몰려드는 피로감에 넉다운되어서 그대로 정신을 잃듯이 쓰러져 잠들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아무런 인지도 생각도 없이,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 마마레후- 하고 외치는 소리에 퍼뜩 하고 잠이 깨어버린 장녀였지만, 장녀의 머릿속은 계속된 정신적 충격으로 엉망이 되어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느낌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어느 사이엔가, 마마데후- 하던 소리는 마마레후- 로 바뀌었건만, 장녀는 그저 마마레후- 하는 소리를 들으면 펄쩍 튕겨져 오르듯 잠에서 깨어나서는, 아무 생각도 없이 기계적으로 밥을 먹고, 앉은 자리에서 운치를 싸고는, 다시 그대로 누워 이성과 지성이 모조리 사라져 버린 텅 빈 눈동자를 굴리면서 잠을 자고, 다시 마마레후- 하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일과의 반복만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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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끝나고, 눈이 녹았다. 때는 경칩. 3월이었다. 비로소 봄이 오는 단계이자, 월동을 무사히 마친 실장석들이 비실비실 굴이나 둥지에서 기어나오는 시기였다. 팔달산 수원성곽 너머의, 사람이 잘 찾지 않는 외따로 떨어진 비탈면에 살던 어느 한 실장일가의 골판지에도 따사로운 봄날 햇빛이 반짝이며 내려왔다. 그리고, 종종 친실장이 귀여운 자들을 위해 하루하루 먹이를 구하러 나가던 길을 거꾸로 따라서 올라가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오른손에는 빈 케이지가 하나 있었고, 왼손에는 등산용 지팡이가 하나 쥐여져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앞 주머니에는 자그마한 엄지실장이 한마리 머리를 빼꼼이 내밀고 있었다. 이 작은 엄지실장은 실장옷은 노란색으로 입혀져 있지만, 머리카락이 없었고, 비탈을 올라가는 내내 자그마한 손으로 앞을 가리키며 연신 테치 테치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엄지실장의 손짓을 유심히 살피면서 조심조심 산비탈을 올라가고 있었다.

 

5분 남짓한 거리를 올라간 남성은 눈앞에 정말 기가막히게 잘 위장된, 멀리서는 절대로 찾지 못할 정도로 잘 꾸며진 골판지 하우스를 발견하고는 엄지에게 말을 걸었다.

 

 

"짜리야. 네가 말하던 가족이 살고 있다는 데가 여기 맞니?"

 

 

짜리라고 불린 노랑 실장옷을 입은 엄지는 남자의 손에 이끌려 바닥에 내려주자마자 레치 레치 거리면서 맞다고 대답했다. 사실 이 짜리라고 불리는 엄지는 삽살개의 개밥그릇에 내던져진 오녀 엄지였다. 장녀가 정신없이 도망갈 때, 엄지는 자신의 실장생은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삽살개는 엄지를 먹지도 않았고, 소란에 밖에 나온 남자는 엄지를 바로 죽이지도 않았다. 남자는 팔달산 남문에 집을 두고, 북문 쪽에서 호프집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갑자기 올라간 음식물 처리 수거비용에 골치를 앓던 차에, 술을 시키며 떠들던 자취생들이 하던 이야기가 남자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은 바로 실장석을 음식물 쓰레기 처리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실장석의 경우 워낙 식탐이 높고, 상한걸 먹여도 웬만해선 탈이 나지 않는 데다가, 많은 똥을 싸긴 하지만 그 똥의 형태가 사람으로 치면 물설사 같은 상태라서 하수도에 쉽게 흘려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차에 때마침 자기네 집의 애완견 밥그릇에서 오들오들 떠는 엄지 오녀를 발견한 남자는 불문곡직하고 그 엄지를 짬처리 실장석으로 삼아 키웠고, 제법 개념이 있고 착실한데다 주인말에 고분고분 하다보니 나름 정도 들고 해서 절반쯤은 애완동물 비슷하게 가게의 뒷 공터에서 키워 왔던 것이었다. 게다가 한번 짬처리 실장석의 효과에 맛을 들인 남자는 가족이 혹시 있는지 물었고, 그러자 엄지가 자신이 살던 가족이 있는 골판지 위치를 알려줘서 이렇게 비탈길을 걸어 올라온 것이었다. 남자는 골판지의 상태를 보고는, 제법 경험많은 친실장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 외로 일이 잘 풀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지 역시 겨울 내내 소식조차 모르고 지낸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연신 만세 포즈를 취하며 렛챠~ 하는 환호성을 지르며 신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골판지 하우스가 보이자, 엄지 오녀는 겨울을 무사히 났구나 싶어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골판지 하우스에 가까이 가자, 뭔가 무서운 일이 발생한 듯이 보였다. 하우스 주변에는 어린 자실장 세마리가, 그야말로 악귀같은 표정이 되어, 절망감과 공포에 질린 채로 여기저기 흩어져 얼어죽어 있었다. 그 중 가장 덩치가컸던 자실장 하나는,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골판지 둥지에 들어가려고 애를 쓴 듯, 골판지 하우스의 한쪽 벽면에 거의 달라붙다시피 선 채로 절명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쩌리는 그자리에서 팔짝 뛰어오르더니 레치이이이! 하고 울면서 냅다 골판지 하우스로 달려가 문을 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문은 뭔가에 잠긴 듯, 전혀 열리지 않고 있었고, 그걸 보다못한 남자는 다가가서는 엄지에게 말을 건넸다.

 

 

 

"짜리야. 일단 뒤로 물러나겠니? 내가 문을 열어보마."

 

 

 

그러자 엄지 오녀였던 짜리는 색눈물을 훔치고는, 아장아장 걸어서 남자가 내려놓은 케이지 옆에 가서 문을 열어주는 것을 기다렸다. 남자는 처음에 손으로 문을 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단단하게 뭔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알고, 문을 여는 대신 우산대를 사용해서 지붕에 구멍을 내고는 우산대를 지렛대 삼아 골판지 하우스의 지붕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그 안에는 페트병과 온갖 보온재를 문 앞에 갖다 놓고, 그 건너편에서 웅크려 앉은 한마리의 성체 실장석을 볼 수 있었다. 남자는 짜리를 한손에 들어 올려 놓고는, 골판지의 열린 위쪽에서 내려다보이게끔 짜리를 올린 다음 말했다.

 

 

 

"너희 가족이 맞니?"

 

 

 

처음에는 짜리도 그 성체 실장석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너무 오래 떨어져 있다 보니 냄새도 희미해진 데다, 장녀라고 보기에는 운치로 온몸이 범벅이 되고, 머리카락은 새하얗게 세어 백발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참을 보고 냄새를 맡던 쩌리는 금새 환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장녀 오네차!! 보고싶었던 레치!!"

 

 

 

하지만 장녀라고 불린 성체실장석은 엄지를 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엄지가 자신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시선을 좀더 위로 올려보았다. 그리고, 남자와 장녀의 눈이 서로 마주치자. 장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오녀..엄지차...!! 잡힌테치? 마마도 잡힌테치? 그런것인 테챠??"

 

"무슨 소리하는 레치! 장녀오네차 이상한레치?"

 

"마마가. 마마가 원망하는 테츄! 마마가 닝겐을 데려와 대신 복수하려는 거인 테차!! 꺼지란 테챠! 꺼지란 테...."

 

 

 

검은 색 눈물을 흘리며 정신나간듯 뜻모를 소릴 외치던 성체실장은 꺼지라는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한 채, 파킨 하고 작은 소리와 함께 골판지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것을 보던 엄지는 큰소리로 울면서 소리쳤다.

 

 

 

"장녀 오네차아아아!! 죽지마는 레챠아아아아!!"

 

 

 

 

남자는 실장가족끼리의 결말에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들실장이 겨울을 날 확률은 엄청나게 낮다고 하더니만, 자실장 셋은 얼어죽고, 성체실장 하나는 파킨해 버리니 남자는 헛걸음이 된 것만 같아 영 입맛이 썼다. 남자는 혹시 저실장이라도 가져갈까 했지만, 운치굴이 있던 곳에서는 이미 파킨해서 미라가 되버린 저실장만 가득했다. 결국 성과 제로가 된 남자였지만 그래도 겨울을 못 났다고 탓할 수는 없었다. 운이 없었다고 생각한 남자는 아직도 펑펑 울기만 하는 엄지를 달래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 때, 울고 있던 엄지가, 마치 무언가를 본 듯, 부산하게 호들갑을 떨며 남자에게 말했다.

 

 

 

 

"주인사마. 잠시만 도와주시는 레치."

 

"쩌리야, 죽은건 어쩔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건 없단다."

 

"그게 아닌레치, 주인사마. 장녀 오네차 뒤에 누가 있는것 같은 레치."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죽어있는 성체실장석 뒤쪽에, 초록색 운치가 가득 퍼질러진 곳에, 뭔가 초록색 옷을 입은 듯한 무언가가 꼬물거리는 게 보였다. 남자는 손으로 성체실장석을 치우려 하다가, 잠시 머뭇거리고는 우산대 끝으로 죽은 성체 실장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꼬물거리던 것이 정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저실장 한마리였다. 마치 지금 막 죽어버린 장녀차라 불리던 성체실장이 낳은 건지 이전부터 있던 저실장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마치 막 태어난지 얼마 안된

것마냥 선명한 초록색 실장포대기를 입고, 토실토실 살이 찐, 귀여운 얼굴의 저실장이었다.

 

 

그 저실장은 잠시 동안 무슨 일이 있는건지 모른다는 듯 레후 레후 거리다가, 재주 좋게도 꼬리로 바닥을 지탱하고 자그마한 돌기같은 쪼매난 뒷다리로 땅을 버티고 발딱 서서 직립자세를 취하고는, 앞다리로 보이는 돌기를 마치 인사하듯 방긋방긋 웃으며 흔들면서 눈앞에 보이는 엄지와 남자를 향해 외쳤다.

 

 

 


갸날프고, 작지만, 생전의 마마를 똑 닮은 듯한 귀여운 목소리로. 

 

 


"마마레후~♪"

 

 

 

 

 

 

 

 

마치며 남기는 필자의 넋두리

: 카페계급이 장녀차인데 장녀차가 비참하게 스릴러물의 희생양이 되어 뒤지는 글을 쓰니 정신이 다 혼파망이 되버린 레후.

: 본래 마마레후~ 라는 필자가 창작한 소설은 옜날에 봤던 공포 스릴러 영화에서 비롯된 창작인 레훗.

: 전형적인 착각물 계통 비극물처럼 보이지만, 이건 사실 프롤로그인 레훗.

: 이제 이 예쁘장한 구더기차와, 개념엄지차의 파란만장한 짬처리 실장석 이야기가 본편으로서 대기중인 레후우.

: 다만 직장인이다 보니 바빠서 다음 이야기는 언제될지 장담은 못하는 레후. 물론 일상물에 가까울 거인 레후.

: 필자는 구더기를 애호하는 애호파인 레훗.

: 서투르고 부족한 필력이지만, 참고 봐주셨으면 좋은 레뺫.

: 지적, 조언 모두 환영하는 레뺘. 학대쪽 의견은 사절하는 레에에엥.

: 부디 다들 재미있게 읽기를 바라며 이만 자러가는 레...레....레쿠우....코슈...코슈..

 

 

덧:

소설 내 삽화는 "모" 작가분의 그림을 오브젝트화하여 재작업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후타바공원에 첫 방문 기념으로, 제가 과거에 쓴 스크를 올려두고자 합니다. 즐감하시길. (본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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